생일에 딸아이로부터 ‘소설로 읽는 경제학’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경제학 공부를 하고도 현실 문제에만 부닥치면 끙끙대는 아빠의 모습이 측은했던가 보다. 몇 쪽을 읽어보니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결국 경제학의 기본 원리인 ‘합리성’을 설명하는 책이었다. 경제학 교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경제이론을 이용해 살인사건을 해결한다는 설정인데다 저자 또한 경제학자들이니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경제학이 오죽 어려우면 이런 식으로라도 가르치려 했겠는가 싶었다.
▼혼선 부추기는 설익은 주장들▼
사실 경제이론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가정과 추상화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론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다. 문제는 이론과 현실간의 간격 자체가 아니라 이론의 현실 설명력이다. 과거에 잘 맞던 이론이 지금은 아닐 수 있고, 특정 국가에서 잘 통하던 것이 국경을 넘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현실은 늘 변하는 것이고 그것을 느낀 다음에야 기존 이론의 결함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통제된 실험을 할 수 없는 경제학자들의 노력은 늘 뒷북을 치는 것처럼 보이고 비판의 대상이 되기 쉽다. 경제학자들의 예측을 믿느니 차라리 일기예보를 믿겠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옴직도 하다. 그러나 기존 이론을 수정하고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려는 학자들의 꾸준한 노력 없이 현실 경제가 발전할 수는 없다. 충분한 해답은 아니더라도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론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근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놓고 벌어지는 다양한 논쟁들은 어불성설인 경우가 많다. 언론에서 접하는 토론이나 글을 보면 웬 비범한 경제전문가들이 그리도 많은지, 기존 이론 배우고 오늘의 현실 쳐다보며 새로운 이론을 생각하는 식의 평범한 경로를 따르는 경제학도들은 명함도 내밀기 힘들다.
수출이 내수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평등원리를 정책에 주입하는 좌파 정권 때문이고 생산이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좌파 정권을 견제하려는 우파 세력 때문이라는 식의 논조가 세상을 지배한다면 보통 학자들은 죄다 보따리를 싸야 할 것이다. 툭하면 ‘경제는 심리다’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정신과 의사나 홍보 전문가를 경제 장관이나 참모로 삼을 일이다. 경제주체의 불안감이 주로 시장의 불확실성에 기인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불확실성의 근거가 되는 것은 대부분 정책이나 물가, 일자리와 같은 구체적인 경제 변수인 것이다.
버젓이 추경예산 짜고, 세금 내리고, 금리인하 하면서 단기 부양은 우리 사전에 없다고 정부가 나서면 강의실에서 ‘케인스’를 배운 무수한 경제학도들은 바보가 된다. 단기건 장기건 정책의 평가는 효과와 비용을 중심으로 행해져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성장과 분배는 좋은 식이건 나쁜 식이건 함께 가는 것이 보다 일반적인 경험이다. 단기적인 정책자원 배분 과정에서 불가피해지는 효율과 형평의 충돌을 신이 내린 진리처럼 설파하고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더 어지러워진다.
선무당이야 어느 시절이나 있는 법이니까 그렇다 치고 정작 분발해야 할 사람들은 평범한 경제학도들일 것이다. 고용 없는 성장, 생산성의 장기 침체, 안정화 수단의 한계, 기업가정신의 추락, 정책결정과 집행의 정치과정, 재정의 사회적 위험 흡수, 국제투자와 무역의 보완성 등 새롭게 다가오는 현실은 좌절이 아니라 도전의 원천이다.
▼합리성 원칙에서 다시 살펴야▼
더위 먹은 정치판의 식객이 아니라 차가운 진리의 전도사가 되려면 경제논의의 출발은 합리성이라는 원칙에 있음을 재삼 깨우쳐야 한다. 이름 없는 서생들이 연구실에서 쏟는 땀방울이 바로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해소할 기본 동력인 것이다. 그들이 왜 좌절하는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