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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恩來도 '발해는 한국사' 인정

입력 | 2004-08-13 01:47:00


저우언라이(周恩來·1898∼1976) 전 중국 총리가 1963년 한민족이 중국 동북부에서 거주해 온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부인하려는 일부 중국학자들의 ‘대국적 쇼비니즘(국수주의)’을 비판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저우언라이 총리는 특히 발해가 조선 민족의 한 부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려는 중국인들의 사과를 촉구했다. 이는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킨 최근 중국 정부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연수 중인 설훈(薛勳) 전 의원이 입수한 ‘저우언라이 총리 중국-조선관계 대화’라는 문서를 통해 밝혀졌다.

이 문서에 따르면 저우언라이 총리는 1963년 6월 28일 중국을 방문한 북한 조선과학원 대표단에 “조선 민족의 발자취는 랴오허(遼河)와 쑹화(松花)강 유역, 투먼(圖們)강 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수많은 조선 문헌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징보(鏡泊)호 부근은 발해의 유적이 남아 있고, 또한 발해의 수도였다. 여기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도 역시 조선 민족의 한 지파(支派)였다는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그는 특히 “당나라도 전쟁을 치렀고 또 실패했으나 당신들을 무시하고 모욕했다”며 “그러나 여러분 나라의 훌륭한 한 장군이 우리 침략군을 무찔렀다”고 말했다. 이는 644년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안시성에서 양만춘이 막아낸 것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저우언라이 총리는 “중국 역사학자들은 이런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그들은) 어떤 때는 고대사를 왜곡했고, 심지어 여러분의 머리 위에 조선 민족은 ‘기자(箕子) 자손’이라는 말을 억지로 덧씌우고 평양에서 그 유적을 찾아 증명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했다”고 비판했다.

저우언라이 총리는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 “이것은 중국 역사학자나 많은 사람이 대국주의, 대국 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며 “많은 문제가 불공정하게 씌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당신들의 땅을 밀어붙여 작게 만들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당신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투먼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 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