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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그때 그시절엔]뮤지컬 배우 최정원씨와 교복

입력 | 2004-08-15 17:28:00

두발자율화에 이어 1983년부터는 중고등학생들의 교복 착용도 ‘개성신장’을 이유로 폐지됐다. 교복제도 폐지 이전의 학생들. -동아일보 자료사진


1982년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중고등학생들의 두발 자율화가 시행됐다.

군인들보다 더 짧아, 거의 스님 수준이었던남학생들의 일명 ‘빡빡머리’도 사라졌고 여학생들은 ‘단발머리’에서 해방됐다. 하지만 나에게 또 하나의 ‘적’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건 바로 ‘교복’이었다.

지금은 교복 디자인이 다양하지만 그때는 모든 여학생들이 똑같은 교복을 입었다. 그 때는 지금처럼 다양한 디자인의 교복이 아니라 모든 여학생들이 똑같은 교복을 입었다. 검은색 플레어스커트에 학교 배지, 학년 마크, 이름표가 달린 흰색의 상의였다.

영화 ‘클래식’이나 ‘말죽거리 잔혹사’ 등 요즘 영화에서도 그 시대의 교복을 보여주기에 그 교복을 입어보지 않은 세대들도 어떤 모습인지는 아마 알 것이다.

요즘 여학생들은 영화에 나오는 깔끔한 교복 이미지만 보고 ‘그때 그 교복’을 입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실제 그 교복을 입어야 했던 우리들은 영화 속의 그런 모습만은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는 그 교복에 흰 양말, 검은 단화 등이 깔끔한 이미지로 그려져 그 교복을 입어보지 않은 요즘 여학생들은 ‘그때 그 교복’을 입어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실제 그 교복을 입어야 했던 여학생들은 영화 속의 그런 모습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정원이 너, 허리에 말아 올린 치마 펴지 못해!”

아침마다 듣던 어머니의 잔소리였다.

유난히 길어 보이는 치마가 불만이었던 당시 여학생들은(대부분 1학년 학생에게 교복은 크기 마련) 치마 허리부분을 보통 두 세 번씩 말아 올려 최대한 길이를 짧게 해서 입는 게 유행이었다(저만 그랬던 거 아니었죠? ^^). 획일적인 스타일의 교복을 어떻게 해서라도 남과 다르게 입고 싶었던 나는 치마 옆을 길게 터서 등교할 땐 치마 안쪽에 옷핀으로 고정시키고, 하교할 땐 옷핀을 떼고 다리를 섹시하게(?) 슬쩍 드러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아무리 옷핀으로 고정시켜 놔도 선생님들은 귀신같이 알아보셔서 야단도 숱하게 맞았다. 그래도 나는 꿋꿋했고, 심지어 친한 친구들이 따라하는 것조차도 못하게 말릴 만큼 남과 다르고 싶었다.

옆도 길게 트여지게 해서 등교할 땐 치마 안쪽에 옷핀으로 고정시키고 하교할 땐 옷핀을 떼곤 했던 기억이 있다.

1983년 마침내 ‘적’이 사라졌다. 학생들의 개성 신장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 등으로 교복제도가 폐지된 것이다. 선배들은 6년씩 입던 교복을 1969년생인 나는 1년만 입었을 뿐이지만 당시로서는 2002년 우리나라 축구가 월드컵 4강에 진출한 것만큼이나 기쁜 일이었다.

요즘 거리를 지나다 보면 여학생들의 교복 입은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음짓게 된다. 내가 교복 입던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다양해진 교복이 예뻐서도 그렇지만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을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중학교 1학년 때 교복을 1년만 입었다는 사실이 이제는 아쉽기까지 할 만큼 교복은 내게 풋풋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기억이 됐다.

“엄마, 이 치마 너무 길잖아!”

여섯 살 난 딸아이가 하얀 치마의 허릿단을 한 번 접어 입는다. 고작 여섯 살 난 아이가 치마 길이에 신경 쓴다는 게 맹랑하기도 하지만 웃음도 난다. 딸아이와 실랑이를 하면서 20여년 전 교복 치마를 줄여 입던 그때가 생각난다.

●최정원씨는?

△1969년생 △1989년 ‘아가씨와 건달들’로 뮤지컬 데뷔 △16년간 ‘토요일 밤의 열기’ ‘사랑은 비를 타고’ 등 19개 작품 출연 △한국 뮤지컬 대상 신인상, 조연상, 인기 스타상, 주연상 등 수상 △현재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출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