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장비를 갖추고 사시사철 쾌적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지어졌다는 뜻으로 ‘웰빙(well-being)’이란 말을 붙인 건축물이 늘고 있다. 그런데 웰빙 건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시사철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쾌적한 공기조절시스템, 언제든지 펑펑 쏟아지는 온수, 인터넷과 연결되어 어디서든 제어가 가능한 각종 편의시스템의 이면에는 ‘많은 에너지 사용’이 자리 잡고 있다.
에너지를 과소비하는 건축물은 환경오염과 자원 고갈 등의 문제를 낳고 경제에도 악영향을 준다. 결과적으로 웰빙이 자칫 일자리를 줄이고 무위도식하는 실업자를 양산하는 ‘일빙(ill-being)’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물론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에너지 사용도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편안한 삶’과 ‘에너지 절약’이라는, 상반될 수 있는 두 개의 가치를 적절하게 조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가 사용되는 생활공간, 즉 사무실이나 집 등 건축물의 에너지 이용 효율 향상이 필수적이다.
건축물은 초기 단계에서부터 에너지 효율을 염두에 두고 지으면 50년, 100년 동안 원천적으로 에너지 절약이 가능하다. 그러나 건물은 건축자와 소유자, 사용자가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에너지 기자재의 선택에 있어서 ‘에너지 효율’이 간과되기 쉽다. 건축주는 에너지 효율보다는 저렴한 제품을 선호하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해서는 고효율 기자재를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선진국에서는 그런 제도가 일반화돼 있다. 덴마크는 1997년부터 대형 빌딩은 물론 주택 등 소규모 건물에 대해서까지 에너지라벨을 부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1년 ‘건물에너지효율인증제도’를 도입했다. 7월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A주상복합건물이 최초로 1등급 인증을 받았다. 1등급 인증을 받은 건물은 일반주택에 비해 40%의 에너지 절약이 가능하기 때문에 입주자들이 에너지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평형이나 에너지 사용 습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난방비의 경우 월평균 22만원 이상을 절약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은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평가해 우수 건물주와 시공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도 에너지효율 1, 2등급 인증 건물을 건축하는 시공사에 대해서는 최고 300억원까지 에너지절약 시설투자자금을 장기 저리로 융자해 주는 제도가 있다.
그러나 이런 지원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의 선택이다. 덴마크 같은 나라에서는 건물의 에너지 등급이 매매가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고효율 건축재와 기기를 많이 사용한 건물은 에너지 비용이 줄어드는 만큼 거래가격이 높게 책정되는 것이다.
에너지의 중요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과다한 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기상 이변도 계속되고 있다. 건물을 짓고 선택하는 데에도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진정한 웰빙 의식이 필요하다.
김균섭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