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올림픽이 108년 만에 첫 개최지인 그리스 아테네로 돌아왔다. 1896년 첫 대회 이후 세계 평화와 상호 이해라는 이상을 안고 ‘집을 떠난’ 올림픽은 본래의 순수성을 잃은 ‘탕아’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명예를 중시하는 스포츠인의 목표였던 올림픽은, 100여년간 이념과 정치의 격랑을 거치며 ‘돈 잔치’로 모습을 바꿨다.
▽‘한 몫 잡는’ 올림픽=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12일자에서 미국의 아테네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NBC TV의 올림픽 광고 유치가 종전 사상 최대였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9억달러(약 1조440억원)를 넘어서 10억달러(약 1조16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NBC TV가 아테네 올림픽의 미국 중계권료로 지불한 돈은 7억9300만달러. 방송사로서는 2억달러 이상을 단번에 챙기는 셈이다.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기는 공식 후원업체로 참여한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에 공식 후원업체로 참여한 뒤 세계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이 5.0%에서 9.7%로 크게 올라갔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자료에 따르면 아테네 올림픽 공식 파트너 11개사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지불한 후원금 총액은 6억달러 이상. 업체 평균 5500만달러(약 7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에서는 공식 후원업체에 대한 ‘과보호’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공식 후원업체 경쟁사의 제품이나, 로고가 크게 그려진 모자, 티셔츠 등은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다. 자칫 카메라에 잡히면 후원업체의 경쟁사 제품을 간접 광고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IOC의 ‘지나친 우려’도 상업주의 올림픽의 한 단면이다.
▽재주는 곰이, 돈은 누가?=올림픽은 IOC와 다국적 기업에는 ‘기회’이지만 개최국 그리스에는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나친 비용 지출 때문이다.
국제적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최근 그리스가 올림픽에 지출한 돈이 너무 많고, 부채가 늘어남에 따라 올림픽 이후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이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S&P에 따르면 그리스는 이번 올림픽에 당초 책정했던 46억유로보다 많은 61억유로(약 8조6500억원)를 지출했다.
S&P는 올해 그리스의 부채 예상치를 236억유로에서 400억유로로 올려 잡았다.
그리스는 특히 테러에 따른 보안 비용에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6배에 달하는 12억유로를 쏟아 부었다.
문제는 투자한 만큼 열매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
전통적인 관광 대국인 그리스는 아테네 올림픽을 통해 관광객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테러 위협과 올림픽 기간 물가 상승 등의 요인으로 오히려 관광객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올해 그리스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예년에 비해 10%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스가 올림픽 투자비용을 만회하지 못하고 부채가 가중된다면 지난해 4.3%였던 경제성장률이 올해는 3%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념보다 돈=올림픽의 최근 변모는 ‘인류 최대의 제전’이 ‘정치성’을 탈피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올림픽은 ‘국력 경쟁’의 대리전 양상을 보였다.
과거 올림픽의 일부 종목에서 ‘국가 차원의 약물복용’ 파문이 일어났던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뉴스위크 최근호(16일자)는 “강대국은 더 이상 속임수를 써가면서까지 올림픽을 제패하려 들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마지막 공산주의 스포츠 강국 중국에까지 나이키가 대표팀 스폰서로 나선 마당에 ‘정치적 이념’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는 것.
올림픽이 정치성을 벗어난 것은 일견 반가운 일처럼 보이지만 순수성으로의 회귀와는 거리가 멀다. 이념이나 명예가 비운 자리를 돈이 차지했을 뿐이다. 올림픽에서도 ‘경제 원리’는 적용된다.
미국 올림픽위원회(USOC)는 이미 금메달 획득 가능성이 있는 종목에 예산을 집중적으로 배분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수영스타 마이클 펠프스는 아테네 올림픽에서 8개의 금메달을 따면, 즉 마크 스피츠가 1972년 획득한 금메달 7개를 넘어서면 ‘스피도’로부터 100만달러를 받는다.
뉴스위크는 중국에서도 경제 발전으로 스포츠가 ‘여피족 취미’가 되면서 스포츠 강국으로서 중국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고 전했다.
○ 올림픽과 마케팅
올림픽에 마케팅 개념이 도입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사실 고대 올림픽에서도 올림픽 마케팅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일부 참가 선수가 돈 많은 개인으로부터 후원을 받았던 것.
근대 올림픽에서는 코닥이 제1회 대회에서 기념품에 광고를 하는 형태로 올림픽 기금을 지원했다.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는 코카콜라사가 미국 선수단에게 코카콜라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올림픽 마케팅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삼성전자 홍보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신기한듯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본격적으로 기업들이 올림픽 마케팅에 나선 것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부터. 피터 유베로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조직위원장은 올림픽에 기업 후원 개념을 도입해 2억2500만달러 ‘흑자 올림픽’을 성사시켰다. 이에 자극받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85년부터 올림픽 공식 후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비로소 올림픽이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 IOC는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고, 기업들은 올림픽 휘장 사용 등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획득해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한편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불과 3000달러였던 TV 중계권료도 급격한 상승세를 보였다. 1984년 2억8700만달러, 1988년 4억300만달러로 오르더니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13억3100만달러로 껑충 뛰었다. 아테네 올림픽의 총 중계권료는 15억300만달러.
올림픽에서 아마추어리즘이 사라진 것도 중계권료의 급등과 맥락을 같이한다. ‘볼거리’ 제공의 필요성을 느낀 IOC가 축구와 농구에 프로 선수의 참가를 허용한 것.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들이 주축이 된 미국농구 ‘드림팀’이 올림픽 코트를 휘젓는 장면은 세계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