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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전망대]임규진/시장경제는 민족생존의 길

입력 | 2004-08-16 17:42:00


1997년 12월 10일 관악산 자락의 정부과천청사.

정부 고위 관계자는 “올겨울에 우리 국민이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릴 뻔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외국 농산물 수출업체들이 외환위기로 부도난 한국과는 외상거래를 못하겠다고 통보한 것. 정부가 백방으로 뛴 끝에 미국 정부의 보증을 얻어내 외상거래를 재개할 수 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한국이 미국의 식량지원을 받았던 50년대 시절로 되돌아갔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후 몇 년간 국민이 겪은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다. 경제를 광내고 폼 잡는 수단쯤으로 생각한 집권층의 무지 탓이다. 시장경제에는 공짜가 없었다.

북한 주민은 더 큰 참극을 겪었다. 달러는 없고 외상거래도 진작에 끊어진 이 동토의 땅에서 1994년부터 1997년까지 무려 300여만명의 동포들이 굶어 죽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파산과 시장경제의 글로벌화에 적응하지 못한 집권층의 무능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이쯤 되면 국리민복(國利民福)의 길은 ‘시장경제’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법한데 최근의 남북한은 거꾸로 가고 있어 걱정이다.

북한을 보자. 굶주림은 면했지만 1인당 소득 800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에 속한다. 게다가 한국의 식량지원이 없으면 당장 굶어야 할 형편이다.

그러나 집권층은 여전히 시장경제의 과감한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사회주의체제 붕괴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기업과 국민이 희망을 갖고 있지 못하다. 기업인들은 경제에 대해 희망을 버린 상태다.”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최근 진단한 한국경제의 현실이다.

하지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보다는 ‘편 가르기’에 쏠려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기득권층으로 분류된 반대편은 종횡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현재의 기득권층은 부패세력에서 돈 많은 사람, 수도권 주민으로 확대됐다. 과거의 기득권층은 군사독재세력에서 일제강점기의 친일세력, 동학농민전쟁 때의 봉건세력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런 식이라면 통일신라 김춘추와 한국의 소위 ‘친미반북세력’도 조만간 살생부에 올라야 할 것 같다.

궁극적으로 ‘사유재산을 전제로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시장경제도 편 가르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국부(國富)를 가져왔지만 탐욕과 부패, 불평등도 불러온 시장경제 아닌가.

이런저런 기득권층을 다 청산하려면 5년은 어림없고 최소 30년은 걸릴 듯싶다.

결국 브레이크 없는 ‘편 가르기’는 ‘힘없는 자주’와 ‘가난한 평등’을 낳을 것이다. 30년 푸닥거리를 견뎌낼 시장경제는 없기 때문이다. 광복 59주년을 맞아 ‘시장경제에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일’은 남북한 모두의 절실한 과제가 됐다.

임규진 경제부 차장 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