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 50권, 논문 200편에 이르는 학문이력, 신문 칼럼 등을 통해 정부의 학문정책 부재와 학계의 무사안일을 질타하는 고언들을 쏟아내 온 조동일(趙東一·65·국문학·사진) 서울대 교수. 이달 말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그는 올 3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e메일을 보냈다.
‘36년 반의 교수노릇을 그만둔다. 제자들이 본 나의 과거를 통해 사제(師弟) 동행의 행적을 밝히고 싶다. 먼저 소식을 들은 사람이 가까이 있는 동창생들에게 알려 글을 쓰게 하기 바란다. 숨은 일화나 비장한 자료가 있으면 좋다. 재미있고 웃음이 나는 것을 환영한다. 찬사는 피한다.’
이 독특한 회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제자는 75명. 조 교수는 자신의 학문이력에 제자들의 편지를 함께 묶어 펴낸 회고록 ‘학문에 바친 나날 되돌아보며’(지식산업사)를 최근 펴냈다. 스승을 향한 외경에 웃음과 추억을 담은 제자들의 글을 읽다보면 누가 이 시대를 스승이 사라진 시대라 했는지 반문하게 된다.
글 곳곳에는 ‘공부와 강의만이 전부였던 인간 조동일’의 모습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수업시작 이후에는 누구도 강의실에 들어올 수 없었고 과제 마감시간을 1초만 넘겨도 받지 않았으며 F학점을 ‘남발’했던 스승, 연필과 원고지를 고집하며 책상정리도 하지 말라 했던 괴짜 스승. 하지만 제자들은 그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라고 기억한다.
복도 끝 막다른 곳에 가장 먼저 실루엣을 드러내는 스승의 뱃살을 추억하는 제자에서부터 스승의 우산 훔친 것을 10여년 만에 고백하는 제자들은 이제 ‘같이 늙어가는 중년’이건만 옛일을 회고할 때는 스승에게 혼쭐나던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조 교수는 제자 60여명과 함께 11일부터 1박2일 계룡산 등산으로 출판기념회를 대신했다.
‘교수노릇’에 얼마나 자신감이 있었으면 이런 프로젝트를 생각해 냈을까. 그러나 책 말미에 적은 그의 글을 보니, 이 책은 사람 하나 제대로 키워 보겠다는 일념으로 자애를 감춰 온 한 노 교수의 피로와 회한의 기록이었다.
‘교수노릇을 잘못해서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내가 너무 엄격하고 가혹해 상처가 남은 다수 제자들의 행방을 알지 못해 술회를 들을 수 없어 위로할 방도를 찾지 못한다. 숨 가쁘게 달려온 걸음을 멈추고 앞뒤를 돌아보니 중년 이후까지 가장 많이 시달린 사람은 내 자신이다. 신이 나서 시달리는 줄 모르다가 이제야 알아차릴 수 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