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마침내 세계자본주의의 취약한 고리가 되었다….”
1998년 ‘설마 핵(核) 강대국 러시아가 부도를 내겠느냐’는 시장의 도덕적 해이는 파국을 맞았다.
8월 17일 러시아는 루블화 표시 외채에 대해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했다. 70년 사회주의 실험에 이은 ‘7년 자본주의’ 실험은 실패로 막을 내리고 있었다.
‘세계경제의 신데렐라’였던 아시아가 추락한 게 바로 그 한해 전. “다음은 어디인가(Who is next)?”는 시장의 불길한 화두가 되었고, 그 불똥은 러시아로 튀었다.
신용평가기관들은 일제히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루블화는 폭락했다.
총파업, 시위, 식량난, 물물교환….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최악으로 치달았다. 전 사회가 연쇄지급불능이라는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자신만만하던 시장경제 옹호론자들은 사라지고 ‘공산주의 유령’이 무덤 속에서 나와 배회하기 시작했다. ‘유대인의 러시아 점령’ ‘시오니스트들의 음모’라는 선전책자가 홍수를 이루었다.
민주는 ‘무질서’였고, 개혁은 ‘파산’과 동의어가 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러시아를 자본주의의 세계체제 속에 끌어안아야 했다.
러시아는 세계경제에서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값싼 자원의 공급원이었고 세계 ‘중심부’의 주요 시장이었다. “1931년 미국의 일방적인 모라토리엄 선언이 세계대전의 근본원인”(케인스)이었던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러시아가 그 전철을 밟게 할 수는 없었다.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국제사회는 덫에 걸렸다. 러시아 경제는 ‘신자유주의’의 볼모였다.
IMF와 세계은행, 그리고 ‘G7’은 러시아의 시장주의자들을 살려냈다. 긴급수혈을 통해 임종에 이른 옐친의 수명을 연장했다. 국제자본과 옐친은 오랜 동맹이었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 경제는 혹독한 자본주의의 ‘훈육(訓育)’을 받아야 했다. 루블화를 최고 38.7% 평가 절하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러시아는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순한 양’으로 거듭났고, 때마침 국제유가의 고공행진 등에 힘입어 기적적으로 회생했다.
세계화의 이데올로기는 그 거스를 수 없는 ‘자본의 비늘’로 ‘북극곰’을 길들였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