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박순철
대쪽을 쪼개듯(17)
이틀이 지났다. 번쾌와 조참이 서쪽으로 위수(渭水)를 거슬러 올라간 뒤로 줄어들기 시작한 폐구 성밖의 물줄기는 그날 아침이 되자 원래의 절반도 안 되게 줄어들었다. 번쾌와 조참이 상류의 두 물줄기를 막아 많은 물을 가두어두었다는 뜻이었다.
폐구를 에워싸고 있으면서 위수의 물줄기를 끊어 폐구성의 해자(垓字)로 물길을 끌어대 놓고 있던 나머지 한군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마련해둔 수만 개의 모래주머니로 위수의 흐름을 끊고 있는 둑을 높이면서, 아울러 해자로 이어지는 물길 동쪽도 높였다.
한편 폐구 성안에 갇혀있던 옹왕(雍王) 장함은 한군이 갑자기 공성을 멈추자 슬며시 의심이 났다. 하루를 기다렸다가 성루 높은 곳으로 올라가 세밀하게 한군의 진채 쪽을 살폈다. 놀랍게도 한군이 위수를 끊어 성쪽으로 물길을 돌리고 있었다. 거기다가 다음날부터 위수 물이 차츰 줄어들자 장함도 한군의 계책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장함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성을 나가서 싸워봤자 두 곱절이 넘는 한나라 대군이 쳐둔 그물 속으로 뛰어드는 격이요, 그렇다고 에움을 헤치고 달아날 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새왕(塞王) 사마흔과 적왕(翟王) 동예에게 올 것 같지도 않은 원병을 다시 재촉하는 한편 나름대로 수공에 대비했다. 성벽이 허술한 곳을 두텁게 쌓아 올리고, 군량을 성안 높은 곳으로 옮겨 놓아 물에 잠기는 것이나 면하게 하는 정도였다.
(강물을 끊어 성을 잠기게 하겠다는 한군의 계책이 무리한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은 가을도 늦은 9월이 아니냐. 수공(水攻)을 펼치기에는 수량(水量)이 너무 적을 뿐만 아니라 군사들을물길 막는 일로 부리기에 너무 날이 춥다. 가을비가 왔다 하나 벌써 며칠 전이니,위수의 물이 줄어든 것도 절로 그리 된 것 일 뿐 사람의 힘으로 물을 가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한군의 공격이 멈춘 지 사흘 째 되는 날도 장함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성벽에 올라 바깥의 변화만 살폈다. 그런데 그날은 모든 게 심상치 않았다. 위수 물이 절반으로 줄어있을 뿐만 아니라 성벽 밖 해자로 이어지는 물길 동쪽으로는 모래주머니가 성벽높이로 쌓아올려지고 있었다.
(아무리 위수를 끊어 막았다 하나 설마 폐구성 같이 큰 성을 물에 잠기게 할 수야 있겠는가. 물이 들더라도 성안 낮은 곳이나 잠시 잠기게 할 정도일 것이다.)
장함은 그렇게 애써 자신을 달래며 성안 군민들을 다독여 싸움채비를 하게 했다.
그런데 정오가 좀 지났을 무렵이었다. 성벽위에 나가있던 장졸들의 외침이 잠시 성루 안에서 쉬고 있는 장함의 귀에 들려왔다.
“물이다! 큰 홍수가 났다!”
장함이 놀라 밖을 내다보니 정말로 벌건 황토물이 발밑 해자로 물려들고 있었다. 전날 한군들이 파놓은 물길을 따라 해자로 휩쓸고 드는데 그 기세가 엄청났다.
물은 그날 한군들이 모래주머니로 높여둔 둑 때문에 점점 높이 차올랐다. 한식경도 안돼 성벽이 낮거나 허술한 곳을 밀어붙이고 성안으로 쏟아져 들어가 낮은 곳부터 먼저 잠기게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장함은 한 가닥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