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가장 세계적인 스포츠는 蹴球가 아닐까 생각된다. 특히 중국의 蹴球는 최근 들어 國技(국기·한 나라의 대표적인 운동)에 가까울 정도로 인기가 높지만 1978년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한국의 축구를 이기지 못한 ‘恐韓症(공한증)’의 징크스를 갖고 있다.
蹴은 足(발 족)과 就로 이루어졌는데, 就는 발음부도 겸한다. 就는 소전에서 京(서울 경)과 尤(더욱 우)로 구성되었는데, 京은 원래 기단 위에 높다랗게 지어진 집을 그려 의미부로 쓰였고 특이함을 뜻하는 尤는 소리부로 쓰였다.
그래서 就는 높은 곳(京)으로 ‘나아가다’가 원래 뜻이다. 이로부터 成就(성취)나 就業(취업)처럼 어떤 결과를 ‘이루다’는 뜻도 생겼는데, 이후에 생겨난 의미가 더 자주 쓰이게 되었다. 그러자 원래의 ‘나아가다’는 뜻을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발의 모습을 그린 足을 더하여 蹴이 되었다.
球는 의미부인 玉(옥 옥)과 소리부인 求로 구성되어 ‘玉으로 만든 공’을 뜻했다. 求는 갑골문에서 옷(衣·의) 사이로 털이 삐져나온 모습을 해, 털이 달린 가죽 옷을 그린 상형자이다.
가죽옷은 지금도 귀한 옷이지만 난방 시설이 열악했던 옛날에는 추위를 나는데 더욱 귀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가죽 옷은 모든 사람들이 ‘구하고자 하는’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求에는 追求(추구)하다, 要求(요구)하다, 請求(청구)하다 등의 뜻이 담기게 되었다.
그래서 求는 이후 구하다는 뜻이 주된 의미로 자리 잡았다. 예컨대, 救는 손에 막대기(복·복)를 쥐고 사람을 구해 주는 모습을, 逑는 원하는 사람(求)을 만나다(착·착)는 뜻에서 ‘짝’이라는 뜻이 생겼다. 이렇게 되자 원래의 가죽 옷을 나타내기 위해 衣를 더하여 구를 만들었다.
蹴球를 현대 중국어에서는 발로 하는 구기종목이라 해서 ‘쭈추(足球)’라 하는데 우리의 足球와 혼동될 우려가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오늘날의 蹴球는 서구에서 들어왔지만, 과거 중국에도 蹴鞠(축국)이라 불리는, 비슷한 운동이 있었다. 蹴鞠은 서한 때의 劉向(유향)이 지은 ‘別錄(별록)’에 이미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었으며, 한나라 고조 劉邦(유방)은 아버지를 위해 따로 축국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나라 때는 두 기둥 사이에 그물을 걸었다고 하니 지금처럼의 골대까지 갖추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송나라 태조 조광윤은 황제가 된 이후에도 蹴鞠을 즐겼을 정도로 축국 광이었다고 한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