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부친의 헌병 복무 사실이 드러난 열린우리당 신기남의장의 거취 문제가 당 내에서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신 의장의 사퇴 여부에 대한 견해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고, 당의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찬반논란이 뜨겁다.
신 의장과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 등 당권파측은 즉각적인 사퇴를 거부 또는 반대하고 있다. 이 문제에 연좌제를 적용하는 것은 안 된다는 논리다.
17일 울산을 방문한 신 의장은 지역인사들과의 조찬간담회에서 “(과거청산은) 국민화합을 위한 것이지 누구를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친노(親盧) 직계들도 신 의장의 사퇴에 부정적이다. 대통령비서실장 출신인 문희상(文喜相) 의원이 “신 의장에게 극복의 기회를 주어야한다”고 감싸고 나섰다.
신 의장이 17일 조기사퇴 거부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결국 여권 핵심부의 내부 조율 결과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여권 핵심부가 신 의장의 사퇴에 반대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신 의장 사퇴 이후’에 대한 계산이 분명히 서지 않기 때문이다. 신 의장이 사퇴할 경우 당의 대안은 △다음 서열인 이부영(李富榮) 상임중앙위원의 의장직 승계 △비상대책위로의 전환 △조기 전당대회 소집 등이 있다.
특히 당 지도부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온 이 위원의 의장직 승계는 당권파측에게는 껄끄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당권파측의 한 인사는 “전당대회에서 투표로 선출된 5인의 상임중앙위원 중 정동영 김정길 위원이 사퇴한 상황에서 신 의장까지 물러나면 과반수가 사퇴하는 셈”이라며 “현 지도부가 어떻게 유지되겠느냐”고 말했다.
비대위 구성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비대위 체제로는 핵심개혁과제를 처리해야할 가을 정기국회를 원만히 끌고 가기 어렵다는 것이 당의 판단이다.
조기 전당대회 소집도 정동영 김근태 등 당의 중심인물이 행정부에 가 있는 만큼 대안이 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이 같은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신 의장에 대한 당 안팎의 사퇴 요구 수위는 비등하고 있다. 상당수 개혁파 의원들은 신 의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안영근(安泳根) 의원은 조기 전당대회 소집을 요구하고 나섰고, 우원식(禹元植) 의원은 “국민이 느끼는 상식대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영달(張永達) 의원 등 일부 중진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여론의 흐름도 신 의장을 매우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신 의장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이날 신 의장을 비난하는 네티즌들의 항의로 다운됐다. 핵심당원들조차 당 게시판에 신 의장 문제가 “친일청산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사퇴론을 제기하고 있다.
신 의장과 여권 지도부는 당분간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이번 사태의 해결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사람은 많지만 ‘중심 부재’라는 게 열린우리당이 안고 있는 고민의 핵심이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