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오른쪽)과 이해찬 국무총리가 17일 청와대에서 전직 대통령들의 초상화 앞을 지나 국무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박경모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7일 국무회의에서 과거사 진상규명 문제와 관련, “과거 문제가 됐던 사안에 대해 각 기관들이 스스로 조사해서 밝히되 잘 협의해서 방법과 시기 수준 등을 결정해서 체계적으로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회 내 진상규명 특위 구성’을 제안했던 노 대통령이 이날 각 국가기관의 자체 조사와 기관간 협의를 지시함에 따라 과거사 진상규명 문제는 ‘선(先) 자체 조사’ 쪽에 무게가 더 실리는 분위기다.
실제로 국가정보원과 국방부에 이어 검찰, 경찰도 자체 진상조사의 필요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규(金昇圭) 법무부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현재 검찰에서 뭘 해야 할지를 내부에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현재 검찰3과를 주무 부서로 정하고 진상규명 대상사건의 선정 작업 등을 위한 자료 수집을 벌이는 한편 진상규명특위와의 활동 중복 문제 등에 대한 논의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그동안 고문 및 사건 조작 의혹이 제기됐던 1968년 통혁당사건이나 74년 인혁당재건사건, 89년 서경원(徐敬元) 전 의원 밀입북사건 등이 재조사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허성관(許成寬) 행정자치부 장관은 “과거사 규명 사안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도록 경찰에 지시해 놓았다”면서 “경찰의 경우 박종철(朴鍾哲)군 고문치사사건이나 최루탄 사고 정도로 다 알려져 있는 사안들인데 다들 과거사 규명을 하겠다고 해서 우리도 뭘 하겠다고 하기가 그렇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이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으로 국회 진상규명 특위 구성 문제가 어떻게 될지 불투명하지만 ‘기관 자체조사→국회 특위 조사’로 이어질 경우 똑같은 사안을 놓고 재탕 삼탕 조사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
시민단체 쪽에서는 “기관의 자체 조사는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끝날 수 있다”는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다. 이를 우려한 듯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은 이날 “조사결과에 승복할 수 있으려면 조사 과정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단체 등이) 처음부터 조사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관련 사항에 대해 무제한으로 자료 접근이 허용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과거사 진상규명에 있어 국가기관간의 협의 조정 문제는 이해찬 총리의 몫으로 넘겨졌다. 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이 총리가 국가기관간 조율 문제를 지휘하라”고 지시했다. 최근 총리 중심 국정운영 방침에 따라 수도 이전 문제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응 문제 등 ‘골치 아픈’ 현안들이 이 총리에게 넘겨진 것의 연장선이다.
한편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 후 이 총리와 이헌재(李憲宰) 경제부총리, 안병영(安秉永) 교육부총리, 김근태(金槿泰) 보건복지부 장관과 청와대에서 오찬을 함께 하면서 ‘분야별 책임장관제’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