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적(敵)을 제대로 아는 사람을 뽑겠다.’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 때 자기홍보(PR)와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 면접을 하는 이유다. PR 면접은 입사 지원자가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 프레젠테이션 면접은 면접관이 제시한 주제를 지원자가 나름대로 분석해 발표토록 하는 평가 방식이다. PR 면접의 성패는 자신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보느냐에 달렸다. 자신을 과대, 과소평가하는 사람이라면 일을 할 때도 무리하거나 소극적이기 십상이라는 게 기업 인사 담당자들의 생각이기 때문. 기업들은 경쟁업체를 ‘전쟁터의 적’으로 간주한다. ‘적(경쟁사)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그 적을 물리치기 위한 칼(분석력과 지식)은 얼마나 날카로운가.’ 기업들은 프레젠테이션 면접에서 이 점을 본다.》
▽세련된 PR가 먹힌다=‘자기소개를 간단히 해보세요.’ PR 면접에서 나오는 기본 질문이다.
함정은 ‘간단히’에 있다.
면접 때마다 쓴 맛을 본 A씨(면접 탈락자)는 이 말을 ‘짧게’로 해석했다. 출생지와 출신대학 등 이력서에 나온 내용을 되풀이하는 데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자기 PR와 프레젠테이션 면접을 실시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면접에선 자신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핵심을 짚어내는 분석력이 중시된다. 최근 ‘이랜드’ 신입사원 채용시험에 응시한 지원자가 의류산업 현안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 이랜드
B씨(면접 합격자)는 ‘간단히’를 ‘핵심만을 요약해’란 뜻으로 받아들였다. 회사를 지원한 동기, 자신의 업무 성향, 장단점, 자기계발 방안 등 이력서에 없는 내용을 중언부언하지 않고 설명했다. PR 시간은 3분 안팎. B씨의 PR 면접 점수는 A씨보다 2배 이상 높았다.
하나은행 신성철 인력지원팀 차장은 “자신을 알리면서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너무 겸손하면 감점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PR 면접 땐 세련된 포장이 필수. A씨는 ‘누구보다 영어를 잘한다’고 주장했고 B씨는 ‘외국인과 대화에 어려움이 없지만 업무 관련 전문 회화는 성격이 다르므로 보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면접관들은 B씨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 말 속도와 목소리 크기를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
▽프레젠테이션, 핵심을 짚어라=최근 이랜드가 실시한 프레젠테이션 면접 사례를 보자.
우선 A씨의 사례.
그가 잡은 주제는 ‘신(新) 소비자 행태 분석’이었다. 프레젠테이션은 2단계에 걸쳐 이뤄졌다. 1단계는 ‘브랜디즘이란 무엇인가’였고, 2단계는 ‘P브랜드의 브랜디즘 해설’이었다. A씨는 브랜디즘이란 용어를 설명하느라 프레젠테이션용 보고서의 절반 이상을 할애했다. 그는 자료 수집에 공을 들였지만 보고서에 자신의 생각을 담진 못했다. 면접관들은 길게 늘어지는 문체에다 너무 작은 글씨 탓에 집중하지 못했다.
B씨가 정한 주제는 ‘액세서리 상품 업그레이드와 브랜드 차별화를 위한 방안’이었다. 이랜드 경영진이 솔깃해할 만한 주제란 점이 가점(加點) 요인. 서술 방식도 돋보였다. B씨는 우선 목차를 통해 프레젠테이션의 밑그림을 선보였다. 그는 이어 액세서리 시장 환경을 분석한 뒤 당면 과제를 도표로 정리했다.
B씨는 핵심 내용인 액세서리 상품 차별화 방안과 마케팅 전략에 프레젠테이션 시간의 절반 이상을 썼다. 업체별 장단점을 제대로 분석해 당장 현장에 적용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랜드 최유정 주임은 “A씨와 B씨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핵심을 짚어내는 분석력”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별 면접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삼성전자는 면접시험 응시자에게 주제를 제시하고 40분 안팎의 시간을 준다. 응시자는 이 시간 동안 문제를 파악해 7∼10분간 발표한다. 발표가 끝나면 면접관의 질문이 이어진다.
LG전자는 응시자에게 20분간 시간을 주고 3분간 발표토록 한다. 프레젠테이션에는 응시자 2, 3명과 면접관 4, 5명이 참석한다.
면접에 등장하는 주제와 과제는 업체 성격과 직무에 따라 달라진다.
교보증권은 ‘기업분식회계에 대한 의견을 말하라’는 전문적 주제를 내걸었다. 국민은행은 최근 면접에서 응시자에게 직장생활 계획서를 만들라는 과제를 주기도 했다.
▽‘빈 깡통’은 곤란=삼성전자 김현도 경영지원팀 차장은 “전공 분야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다면 면접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프레젠테이션 주제는 대부분 전공과 관련된 것. 김 차장은 “면접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전공 지식이 부족하다면 발표 내용이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점이 쉽게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홍수용기자 legman@donga.com
▼교보증권 입사 하석원씨 “지식의 깊이보다 자신감이죠”▼
“운명을 두려워하면 운명에 먹히고 운명에 도전하면 운명이 길을 비킨다.”
최근 ‘교보증권’에 입사한 신입사원 하석원씨(29·사진)는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가 한 이 말을 좋아한다. ‘당당함과 자신감’을 갖게 해 준 이 말이 입사 성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연세대 경제학과에 1994년 입학한 하씨는 자신의 전공을 좋아했고 산업 현장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싶어 대학 때부터 증권사 입사를 꿈꿨다.
그는 “다른 회사에 다니면서도 계속 증권사 채용시험에 도전해왔다”며 “프레젠테이션 면접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줬던 게 합격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씨의 프레젠테이션 면접 과제는 ‘한국 경제의 문제점과 그 대안’.
그는 내수 침체와 수출 부진이 한국 경제의 문제점이며 정부가 건설경기 부양책을 마련하고 기업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대(對)중국 수출을 늘릴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건설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중국의 각종 수입규제를 한국 수출 산업의 체질 개선 기회로 삼자는 것.
면접관이었던 교보증권 인사부 이태우 과장은 하씨의 프레젠테이션 면접에 대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당당하게 발표하는 모습이 훌륭해 내용과 깊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높은 가산점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하씨는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 스스로 ‘잘될 것, 난 할 수 있다’ 등의 자기최면을 걸고 면접장에서 미소를 잃지 않기 위해 입 근육 운동까지 하는 치밀한 ‘준비파’다.
전략은 적중했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에 따르면 실제로 면접관은 웃음을 지으며 차근차근 주장을 설명하는 그의 태도를 높이 산다는 것.
하씨는 또 면접을 보기 전이면 주요 종합일간지 경제기사와 경제전문지를 통해 면접시험을 보는 회사의 관련기사를 꼭 읽었다. 회사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어떠한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김상훈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