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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첫경험’ 그 냉정과 열정사이… 19일 개봉 ‘팻걸’

입력 | 2004-08-18 18:24:00

날씬한 언니와 뚱뚱한 동생이 가진 ‘첫경험’에 대한 상반된 기대와 이들의 엇갈린 운명을 담은 영화 ‘팻걸’.-사진제공 백두대간


이 세상 모든 여자를 ‘날씬한 여자’와 ‘뚱뚱한 여자’로 나눈다는 건 미련한 일이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여자의 마음속에 있는 자기 자신은 ‘날씬한 여자’ 아니면 ‘뚱뚱한 여자’ 둘 중 하나일 수 있다.

여성이 가진 성욕의 정체를 여성 자신의 시각으로 허물 벗겨 논란을 일으켜온 프랑스 여성 감독 카트린 브레야(56)는 이런 점에서 솔직하고 잔인하다. 19일 개봉되는 영화 ‘팻걸(Fat Girl·2001년 작)’을 통해 그는 사춘기 소녀들이 꿈꾸는 ‘첫경험’의 환상을 난도질하면서, 날씬한 소녀에게도 뚱뚱한 소녀에게도 첫경험은 그저 수컷과 암컷 사이의 일방적 권력 관계만이 지배하는 맛없는 현실일 뿐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사춘기인 두 자매는 외모가 정반대다. 언니 엘레나(록산 메스키다)는 날씬하고 동생 아나이스(아나이스 르부)는 뚱뚱하다. 이들은 무심한 부모와 함께 해변으로 바캉스를 간다. 언니는 사랑하는 남자와 첫 섹스를 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는 반면, 동생은 “첫경험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랑 하고 싶어. 그래야 그 사랑이 진실이 아니란 걸 깨달을 수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언니는 이탈리아 대학생 페르난도를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지 2분 만에 뜨거운 키스를 한 뒤 다음날 밤 자신의 침대로 끌어들인다. 언니와 방을 함께 쓰는 동생은 건너편 침대에서 언니의 첫경험 현장을 잠든 체하며 지켜본다.

시간을 유난히 느린 속도로 흐르게 하는 이 영화에서 읽어야 할 것은 끊임없이 조잘거리는 대화 뒤에 숨어 꿈틀거리는 성 에너지이며, 이 대화를 통해 감독이 던지고자 하는 냉소적 유머다. 첫경험을 앞두고 초조해 하는 언니와 안달복달하는 남자 대학생의 긴 대화는 그들에게는 중요하고 사적이고 내밀한 듯하지만, 알고 보면 인간 수컷이 인간 암컷을 당근과 채찍으로 어르고 협박하면서 오로지 ‘교미’를 달성하려고 하는 정글의 모습 그대로다.

“여자 경험 많군요?”(언니)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난 지금 여기 너랑 있는데.”(대학생) “정말? 내가 같이 자지 않아도?”(언니) “그러면 얘기가 달라지지. 난 처녀에게는 관심 없어.”(대학생) “같이 잔 여자를 사랑한 적 없어요?”(언니) “다른 여자들은 중요하지 않아.”(대학생) “나도 같이 자면 다른 여자랑 같아지겠군요?”(언니) “아니, 넌 소중히 여길 거야.”(대학생)

브레야 감독은 외양과 사고력(思考力)을 정면충돌시키면서 차가운 아이러니를 만든다. 날씬하고 섹시한 언니는 첫경험에 대해 구태의연하고 비현실적인 고정관념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반면, 언니에게 불타는 질투심과 열등감을 느끼는 동생은 정작 첫경험을 두고는 몸의 표면적만큼이나 넓고 유연한 생각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언니와 동생은 정말 느닷없고 충격적인 라스트신으로 돌진한다.

‘팻걸’은 국내 처음으로 베드신에서 체모와 발기된 남자 성기가 노출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화제를 낳은 작품. 선정성이 없다는 이유에서 재심 끝에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모자이크 처리되지 않은 노컷 상태로 ‘18세 이상 관람 가’ 등급을 받았다.

브레야 감독은 파격적인 섹스신과 신체 노출로 작품마다 ‘검열’이란 단어를 그림자처럼 달고 다닌다. ‘로망스’(1999년)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 최근 국내 첫 개관한 제한상영관의 첫 번째 개봉작이 됐으며, 최신작 ‘지옥의 해부’(2004년)는 영상물등급위로부터 한 차례 수입추천 불가 판정을 받은 끝에 재심에서 다시 수입추천을 받았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