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의 친일 이력을 숨겨 온 데 따른 도덕성 논란으로 위기에 몰린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이 사퇴의사를 표명했다. 이를 계기로 여권의 과거사 진상 규명에 가속도가 붙고 범위도 한층 넓어질 것이라고 한다. 걸림돌을 털어냈으니 거리낄 게 없다는 분위기가 여권에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권의 이런 인식은 공감하기 어렵다. 신 의장이 물러나는 이유는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지 부친의 전력(前歷) 탓이 아니다. 그의 퇴진을 과거사 정리의 걸림돌 제거로 보는 시각 자체가 사태의 본질과는 어긋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집권측은 이미 ‘과거와의 싸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정원 등 여러 국가기관이 자체 조사에 나섰고, 국무총리는 이를 총괄하는 책임을 맡았다. 어제는 시민단체를 참여시키는 방안도 논의됐다고 한다. 열린우리당은 ‘과거사 진상규명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흡사 당정(黨政)이 똘똘 뭉쳐 과거사 규명에 ‘올인’하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이런 마당에 신 의장 사퇴를 계기로 과거사 규명에 더 강하게 나서야 한다니 무엇을 어떻게 더 하자는 것인가. 일제, 분단, 전쟁, 독재라는 아픈 역사를 있는 대로 뒤지고 파헤치다 보면 온 나라가 반목과 갈등의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자칫 대한민국의 시계가 반세기 전으로 되돌아가 때 아닌 이념전쟁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여권은 과거사 규명과 경제 살리기가 양립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과거사에 ‘올인’할 경우 시급한 국가현안이 실종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거듭 말하지만 과거사 규명은 역사정리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여권이 온통 이 문제에 매달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집권측은 ‘과거사 올인’이 나라의 앞날을 위해 올바른 선택인지, 과연 현 시점에서 다수 국민이 그것을 원하는지 다시 한번 헤아려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