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권 출신인 열린우리당의 386 국회의원들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과거사 진상규명 제안을 적극 지지하는 그룹이다. 이들은 과거사 진상 규명에 대해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 386 운동권 출신들은 “정략적 목표 아래 추진되는 과거사 청산 작업은 사회 갈등과 분열이란 후유증만 남길 것”이라며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하려면 정치권은 손을 떼야 한다”고 반박한다.
▽굴절된 근현대사 바로 세우기 vs 재집권 음모론=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김영춘(金榮春) 의원은 “지난 50여년 동안 밝혀지고 드러났어야 할 과거사 문제가 광복 이후 기득권 지배층의 논리 때문에 유예돼 왔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386 의원들 사이에선 “개혁 정통세력이 집권한 지금 과거사를 들춰내지 못하면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다를 게 뭐가 있느냐”며 전의(戰意)를 다지는 분위기다.
전대협 1기 부의장을 지낸 우상호(禹相虎) 의원은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또 우리 후손들에게 교훈이 되는 역사를 물려주기 위해 과거사 진상 규명은 꾸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인영(李仁榮) 의원은 “과거를 파헤쳐 보복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고 정돈하자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386 운동권 의원들은 과거사 진상 규명에 정략적 음모가 깔려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고려대 운동권 출신인 박형준(朴亨埈) 의원은 “여권이 재집권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면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면 정치권이 손을 떼야 정통성이 부여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부산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성권(李成權) 의원도 “승리한 자의 역사로 과거사를 구조조정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단 학계에서 주도적으로 진상 규명 작업을 하도록 하고 미진한 대목은 정치권에서 다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기 논란=개혁당 출신의 김원웅(金元雄) 의원은 “지금 과거사를 규명하는 것도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있다. 광복 직후에도 나라 건설이 바쁜데 왜 지금 친일 규명을 하느냐는 논리였다”고 말했다.
이에 한나라당 박 의원은 “노 대통령은 과거사 청산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동의하기가 어렵다. 속도 문제일 수는 있으나 비교적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본다. 특히 친일 문제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꾸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고 말했다.
▽여권 시니어 그룹에선 ‘신중론’도=운동권 출신 의원들 사이에서도 일부 시니어그룹에선 시기에 대한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다.
유신반대투쟁을 벌였던 김부겸(金富謙) 의원은 “과거사 진상 규명이 갖는 의미에 대해선 동의하지만 이것이 여야 정치권에서 무한경쟁으로 치달아선 안 된다”며 “서로 상대의 목을 베려고 하지 말고 제대로 진상을 규명하고 국민통합의 에너지를 얻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염동연(廉東淵) 의원도 “규명할 것은 해야 하겠지만 꼭 지금 시급하게 서둘러야 하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는 문제 아니냐”며 신중론을 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