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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보니]김재영/척박한 땅, 연해주의 고려人

입력 | 2004-08-20 18:50:00


얼마 전 내가 사는 블라디보스토크의 크레모보 정착촌 부근을 지나다가 옆집의 고려인 부부를 만났다. 수년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이곳 연해주로 건너온 부부였다. 이들은 비포장도로 길가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수확한 오이를 좌판에 내놓고 팔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다른 고려인 행상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1990년대 초 소련 붕괴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독립 이후 많은 고려인들이 연해주로 돌아왔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지 50∼60여년 만에 ‘귀향’한 것. 러시아 지방정부는 ‘고려인 자치구’ 등의 간판을 내걸고 이들을 중앙아시아로부터 적극 유치했다.

연해주로 돌아온 고려인들은 주로 농사를 짓는다. 별다른 일자리가 없을 뿐 아니라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는 의식이 뿌리 깊기 때문.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55만명 중 70∼80%는 농업에 종사한다. 그 옆집 아저씨도 우즈베키스탄에서 전기기술자로 수십 년 일했지만 이곳에서는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고려인의 앞선 농사 기술과 근면함은 러시아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연해주 이주 초기부터 고려인들은 계절농사를 지었고, 러시아인들도 성공하지 못한 벼농사를 성공시켜 ‘벼농사의 천재’로 불렸다. 러시아에서 노동훈장을 받은 사람 가운데 100명에 70명꼴로 고려인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많은 고려인이 농사를 짓지만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좋은 땅은 모두 러시아 사람들이 차지하기 때문에 정착촌에서 차로 20∼30분 거리의 척박한 땅에서 농사를 짓는다. 농토에는 물이 없어 손으로 물을 길어 와야 하고, 집과 농지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5∼10월엔 아예 농지 근처에 움막을 지어 놓고 산다. 농토가 광활하다 보니 한 가정이 보통 1만∼1만5000평 정도의 땅을 일구는데, 이렇다 할 장비나 기계도 없이 맨손으로 땅을 일군다. 연장이라야 물 긷는 양동이와 괭이가 전부다.

더 큰 문제는 힘들게 키운 농산물을 팔 곳이 없다는 것. 부근에 큰 도시가 없으니 농사를 지어도 내다 팔 곳이 마땅치 않고, 또 도시까지는 많은 운임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엄두를 못 낸다. 요즘은 중국에서 넘어오는 값싼 농산물 때문에 그나마 있던 판로마저 막혀 버렸다. 더운 여름날 옆집 부부가 길거리 좌판을 벌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2001년 농업 지원을 위해 이곳으로 온 나는 한국이 이들을 도울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 봤다. 우리는 쌀을 제외한 대다수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에는 충분한 농토는 있으나 그 땅을 효율적으로 개간할 사람이 없다. 이곳에 농사일에 탁월한 고려인들이 산다는 것은 더없이 좋은 조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기술과 재원이 부족하다. 반면 우리는 농지가 부족한 대신 풍부한 과학영농과 기술, 재원이 있다. 고려인들이 주로 재배하는 곡물은 콩, 감자, 옥수수, 수박, 토마토, 당근 등으로 한국인들이 먹는 농산물과 큰 차이가 없다.

광활한 러시아 땅에 우리나라의 기술과 재원을 바탕으로 고려인들이 농사짓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김재영 고려인돕기 운동회 러시아연해주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