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재생가능 에너지를….’
19일부터 이틀 동안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에너지대안센터가 마련한 ‘재생가능 에너지와 평화’ 국제회의의 결의다. 이 회의는 유가 급등 등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아시아 국가들의 현황을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였다. 특히 에너지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알려진 북한 얘기가 가장 큰 관심을 모았다.
북한에서는 ‘1W의 에너지가 피 한 방울’이라는 구호가 나올 정도다. 1990년대 초부터 옛 소련과 중국의 석유 지원이 줄면서 심화된 에너지 사태는 5년간의 자연재해를 거치며 탄광이 침수되고 수력발전을 통한 전력생산마저 크게 줄어 더욱 심각한 지경이다. 현재 에너지 공급량은 1980년대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그동안 북한은 주로 화석에너지 이용 체계의 복구와 원자력 이용에 노력해 왔다. 한국과 일본 미국 유럽연합(EU) 등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을 통해 북한에 원자력발전소 2기를 세우는 작업에 착수했던 것도 그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은 1조4000억원을 들여 기초공사만 마친 채 중단됐다. 추가로 5조원 이상을 들여 원전을 완공해도 송배전망 구축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전력이 공급되는 것은 10년 이상 뒤의 일이다. 탄광 복구, 에너지설비 교체, 송배전망 정비 등 기존 에너지체계의 복구가 시급한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재생가능 에너지도 당장 북한의 에너지난을 더는 데에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병원 학교 등 공공건물에는 태양광 발전기를 지붕에 얹는다. 바람이 좋은 바닷가와 산지에는 풍력단지를, 골짜기에는 작은 수력발전기를 돌려 산업체나 농장에 필요한 전력을 생산할 수도 있다.
공상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번 회의에서 발표된 사례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방글라데시는 인구 1억3500만명의 30%만 전력망을 통해 전력을 공급 받는 최빈국이다. ‘빈자들의 은행’이란 책을 통해 잘 알려진 그라민은행은 이런 전력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1996년부터 소형 가정용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보급해 왔다. 지금까지 2만3500개의 가정용 시스템이 보급돼 15만명이 전기를 이용하게 됐다. 2008년까지 10만개를 더 보급할 예정이다.
전력망을 갖추기엔 주거밀도가 너무 낮은 몽골과 중국 네이멍구 지방에선 1980년대 초반부터 소형 풍력 발전 시스템 등 독립형 설비로 가정용 전력을 생산한다. 2002년 현재 25만대가 보급됐다. 인도에는 태양열 조리기가 널리 보급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북한에도 얼마든지 재생가능 에너지가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북한 스스로도 재생가능 에너지의 중요성을 인식해 1990년대 후반부터 기술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기초조사를 진행해 왔다. 또 EU와 중국에 필요한 설비 기술을 요청하고 있다. 핵무기 개발과의 연계가 우려되는 원자력, 갈등과 전쟁을 야기하는 석유 천연가스와 달리 바람과 햇빛, 강물과 해수의 흐름 등 재생가능 에너지 자원은 다툼에서 자유롭다.
북한이 재생가능 에너지의 개발과 사용을 확대하도록 기술과 교육, 설비 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재생가능 에너지 자원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남북 공동조사를 선행하면 더욱 좋지 않을까. 이런 협조 관계가 원활히 진행된다면 북한 핵 사태로 촉발된 동북아 긴장을 완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훈 에너지대안센터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