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교정 연희관 입구에서 바라본 언더우드관(위).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주인공 ‘그녀’(전지현)가 남자친구 견우(차태현)를 평상시와는 달리 다소곳한 표정으로 기다리는 장면이 바로 이곳에서 촬영됐다. 연세대 정문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이 일대는 녹음이 우거지고 사계절 운치가 있어 젊은이들의 산책길로 사랑 받고 있다.- 장강명기자
전국에 엽기열풍을 몰고 온 영화 ‘엽기적인 그녀’(전국 관객 480만명 추산).
영화에서 이름도 없이 ‘그녀’로만 나온 전지현은 러닝타임 내내 갖은 엽기행각으로 여성 관객에게는 카타르시스를, 남성 관객에게는 전율을 선사했다.
‘엽기녀’가 어느 학교 학생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영화에는 ‘그녀’가 여대에 다닌다는 대사가 나온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 견우(차태현)가 다니는 학교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의 연세대다.
견우가 수업을 듣는 곳은 연세대 강의실이고 친구들과 자주 소주를 마시는 식당은 연세대 정문에서 이화여대 정문으로 가는 길에 있는 ‘쫄병부대찌개’ 집이다. ‘그녀’가 견우와 전화 통화를 하며 걸을 때 배경으로 나오는 교정도 물론 연세대 캠퍼스.
영화에서 가장 엽기적이고 ‘예쁜’ 장면인 ‘나 잡아봐라 신’은 연세대 연희관(사회과학대학)과 언더우드관(본관) 사이 길에서 촬영됐다.
연희관 입구에서 견우를 만난 ‘그녀’는 견우에게 “하이힐을 신었더니 발이 아프다”며 신발을 바꿔 신자고 제의한다. ‘그녀’의 협박에 못 이긴 견우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무릅쓰고 하이힐을 신었더니 ‘그녀’가 비밀을 가르쳐 준답시고 하는 말.
“나 시험칠 땐 노팬티다? 그런데 나 오늘 시험쳤다! 나 잡아 봐∼라!”
견우는 절뚝거리며 야구장까지 ‘그녀’를 쫓아간다. 영화 개봉 후 많은 연인이 이 장면을 흉내내 한동안 연세대 교정에서는 하이힐을 신고 절뚝거리는 남학생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막상 걸어보면 연희관에서 야구장까지는 빠른 걸음으로도 10분 이상 걸린다.
언더우드관은 담쟁이덩굴이 전면을 가득 덮고 있는 4층짜리 석조 고딕건물. 유럽의 유서 깊은 건축물을 떠올리게 하는 이 건물은 1924년에 지어져 사적 제276호로 지정됐다. 언더우드관 양 옆의 스팀슨관과 아펜젤러관도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스팀슨관 뒤편에는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윤동주 시인의 시비(詩碑)가 나무 그늘 아래에 있다.
‘엽기적인 그녀’에서는 코믹한 장면이었지만 사실 언더우드관 주변은 고풍스러운 멋 때문에 서정적인 분위기의 영화나 화보 촬영장소로 더 많이 이용되는 명소다. 멀게는 영화 ‘겨울나그네’에서 강석우가 이미숙을 처음 만나는 곳이 종합관과 언더우드관 사이의 내리막길이고 영화 ‘클래식’에서 남녀 주인공이 비를 맞으며 뛰어 가다 도착한 장소는 연희관이다. 이 주변에는 봄이면 보는 이의 내장(內臟)까지 붉게 물들일 정도로 진한 철쭉과 진달래가 만개하고 가을이면 낙엽이 가득 쌓이는, 사계절 운치 있는 길들이 한둘이 아니다. 주말이면 인근 주민들도 자주 찾는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연세대 정문까지는 걸어서 10∼15분 거리. 연희관 주변은 연세대 정문을 지나서 5분 정도 더 걸어야 한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이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권미리씨(이화여대 영문과 3년)도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