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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삼윤의 그리스 오디세이]그들은 왜 비극을 사랑했을까

입력 | 2004-08-20 19:13:00


여름철 주말의 밤, 에피다우로스 노천극장에선 그리스 고대 비극이 상연된다. 올림픽이 열리는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21일) 저녁엔 소포클레스의 작품이 막을 올린다. 물론 그리스의 다른 노천극장에서도 이때쯤이면 어김없이 고대 비극을 상연한다.

에피다우로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동쪽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19세기 초 독립 당시 그리스 왕국의 수도였던 나플리온에서 30km 떨어져 있고 아테네에선 버스로 3시간쯤 걸린다. 이곳의 명물은 뭐니 뭐니 해도 앞서 말한 노천극장이다. 무려 1만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를 자랑한다.

그 시절 이 도시의 주민이 얼마나 됐기에 이렇게 큰 극장이 필요했을까. 알고 보니 그때엔 비극이 상연되면 남녀노소는 물론 감방의 죄수들까지 모여들었다고 한다. 공동체 최고의 행사였기에 시민이면 모두 참석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레퍼토리가 비극이라는 사실에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삶과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부조리한 것으로 봤다. 따라서 삶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선과 악을 대결시키되 마지막은 화해, 즉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했다. 그럼으로써 카타르시스(정화)를 얻고 공동체의식을 다졌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인의 가슴속엔 한(恨)이 남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는 아이스킬로스(대표작 오레스테이아), 소포클레스(대표작 안티고네), 에우리피데스(대표작 키클로프스)다. 이들의 작품은 2500년 동안이나 줄기차게 상연돼 왔다.

에피다우로스의 노천극장은 지금도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언덕배기에 부챗살처럼 박혀 있는데 어느 자리에 앉건 음량과 시야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리스인들이 추구한 평등의 가치를 말뿐 아니라 극장 건축에까지 구현했던 것이다. 그리스 문명은 생각 이상으로 이처럼 단단한 구조를 갖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스위스 여행객 리사는 “객석의 중간쯤에서 연극을 봤는데 남성 코러스의 박력 있는 목소리와 연기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살아 나온 것 같은 얼굴로 대사를 읊조리는 배우들의 목소리가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마이크가 없던 시절 어떻게 육성만으로 그 많은 관중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던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비극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 그리스에 그리스다움이 있는 게 아닐까.

역사여행가 tumid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