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이부영(李富榮) 의장은 지난주 거의 매일 세종문화회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뮤지컬 ‘청년 장준하’ 공연을 보러오는 손님들을 영접하기 위해서다.
이 의장은 최근 당권 승계를 둘러싼 당내 논란 속에서도 “1년 이상 준비해서 막을 올린 뮤지컬 표를 파느라 당에 무슨 일이 있는지 몰랐다”고 말할 정도로 이 공연에 공을 들였다.
이 의장이 과거사 청산 문제에 강공 드라이브를 거는 배경에도 유신시대 대표적 재야인사였던 전 사상계 대표 장준하(張俊河) 선생이 자리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 의장이 장 선생의 ‘투쟁 대상’이었던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에 대해 ‘공산주의자’ ‘군내 프락치 총책’ ‘변신과 배신’ 등의 극한 용어를 써가며 비난한 것과 유신에 대한 장 선생의 저항을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주는 뮤지컬 전반부 내용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이 의장과 장 선생의 인연은 깊다. 동아일보 기자 시절 장 선생을 알게 된 이 의장은 그의 사무실을 드나들다 친해진 장 선생의 비서 손수향 여사와 결혼하게 된다.
이 의장은 95년 발간된 장 선생 20주기 추모 문집에서 “장 선생이 대부가 되시어 우리 두 사람의 연을 맺어주셨다. 두 사람 모두 아버지를 일찍 여읜 탓으로 장 선생을 부친으로 모시기로 했다”며 ‘정신적 부자(父子)’가 된 인연을 소개했다. 이 의장은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민주주의 신념은 장 선생의 ‘세례’라고 밝히고 있다.
75년 장 선생이 사망한 후 이 의장은 장 선생의 추모사업 활동을 열심히 해오는 한편 ‘정권에 의한 타살 의혹’과 관련해 사망 원인을 밝히는 데도 적극 나섰다.
박근혜(朴槿惠) 대표 체제의 한나라당을 과거사의 ‘가해자’로 규정하면서 진상 규명의 주체가 될 자격이 없다고 단언한 그의 논리는 이러한 ‘개인사’와 맞닿아 있는 듯하다.
그는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후원금 잔액을 장준하 선생 기념사업회에 기부했고 6월에는 기념사업회장을 맡았다.
박 전 대통령과 장 선생이 70년대에 국가 권력과 민주화투쟁세력의 정점에서 대립했던 관계를 그대로 이어받아 박 전 대통령의 친딸은 야당 대표로서, 장 선생의 정신적 아들은 여당 의장으로서 ‘2세 대리전’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의장의 대야 강공 배경에 개인적 관계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당내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당권파 및 청와대 쪽의 협력을 얻어 리더십을 세우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벗고 당 일각의 의구심을 잠재우기 위한 계산도 깔려있는 듯하다.
실제 열린우리당 홈페이지에서 네티즌들 사이에 불붙고 있는 ‘이부영 과거사’ 논쟁은 이 의장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사이버공간에서는 “이 의장이 과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편에 맹렬히 앞장섰던 과거사도 진상규명하고 털어야 한다”는 주장과 “이 의장은 1월 전당대회에서 이미 사과했다. 지금 그런 일로 당내 논란을 벌일 때가 아니다”란 반박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