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정부주의자가 무제한 번식이 가능한 콜레라균을 훔쳐 런던인의 식수원 저수지에 뿌렸다. 그런데 실상 그가 훔친 것은 과학자가 개발 중이던 ‘진실을 말하는’ 약이었다. 그 후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런던의 거리와 술집은 “당신은 추하고 무식하다” “당신을 사랑한다던 말은 거짓이다” 등 과거의 부정과 진실을 고백하고 쫓겨난 남편들로 가득 찬다. 경찰서는 먼저 죄를 고백하고 자수하겠다는 시민들로 아수라장이다. 프랑스 외무장관을 맞은 총리는 “프랑스는 국가라고 말할 수도 없다. 아무 쓸모없는 말썽꾼의 오합지졸이다. 프랑스가 자랑할 거라곤 240가지 치즈밖에 없다”고 실토해 국교가 단절될 위기에 처한다.
▷이는 물론 드라마 속 이야기다. 홀마크 사의 영상작품 ‘H G 웰스의 무한한 세계(The Infinite Worlds of H G Wells)’ 중 ‘훔쳐간 세균(The stolen bacillus)’ 편의 내용이다. ‘진실’은 좋은 개념이다. 그러나 ‘폭로된 진실’은 어떤 가치를 갖는지 이 에피소드는 희화화(戱畵化)한다. 진실을 고백하는 사람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보다 아마 착하고 마음 약한 사람일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이런 사람들은 패자(敗者)가 되기 십상이다.
▷‘제3의 사나이’(1949) ‘조용한 미국인’(1955) 등 인간의 부도덕성을 주로 그렸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그레이엄 그린도 진실의 존재와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그는 부도덕한 경찰관의 입을 빌려 말했다. “진실은 인간 존재에 실질적 가치가 돼본 적이 없다. 수학자, 철학자나 쫓아다녀야 할 상징일 뿐이다. 인간관계에선 친절과 거짓말이 1000개의 진실만큼 가치가 있었다.”
▷지난주 기자협회 기념식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진실은 국익에 앞선다”는 표현을 듣고 뜨끔했다고 말했다. 오늘날 정치권은 과거의 진실을 캐내는 작업으로 바쁘다. 이 세상 어떤 진실도 캐내지 않으면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다. 그 진실을 굳이 캐내려는 것은 좋든 그르든 어떤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대통령과 정치권의 ‘진실 캐내기’의 저의(底意)는 진실한 것인가.
김영봉 객원논설위원·중앙대 교수·경제학 kimyb@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