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글이 너무 잘못 쓰이고 있는 것 같아 혼자 속상할 때가 많다. 버스를 타면 승객의 안전을 위한답시고 써 붙인 문구부터 눈에 거슬린다. ‘급정·발차 시 위험하오니 손잡이를 꼭 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급하게 출발하고 느닷없이 멈추겠으니 만일 다친다 해도 네 잘못이라는 ‘책임전가’가 아닌가. 친절이 아니라 오히려 승객을 위협하는 글귀다.
더욱 겁나는 말이 있다. ‘차선을 무시하면 당신 목숨도 무시된다.’ 물론 안전운행을 바라는 뜻이겠지만 사람의 목숨을 거론하는 게 불쾌감을 준다. ‘5분 빨리 가려다 50년 빨리 간다’는 표어도 그 표현이 너무 섬뜩하다.
비탈길이나 위험지역에도 이런 종류의 표지판이 많다. ‘조심’이라고만 해도 될 것을 해골 그림 위에 붉은색으로 ×자를 그어 놓는다든지, 벼랑으로 떨어지는 자동차 그림으로 운전자를 주눅 들게 하는 것은 덕을 담은 의사전달이 아니다.
이와는 좀 다른 이야기지만 인터넷에서도 우리말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구어체 비문(非文)은 말할 것도 없고 앞 음절의 종성을 다음 글자의 초성으로 이어 쓰는 연철식 표기와 품사 생략 등이 남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좋더라’는 ‘넘 조터라’, ‘사무실’은 ‘삼실’, ‘안녕하세요’는 ‘안냐세여’, ‘반갑습니다’는 ‘방가’로 흔히 쓰인다. 타자 속도를 올리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한다지만, 너무 심하지 않은가.
말과 글은 그 사람의 인격이자 지성과 덕성의 잣대다. 말은 신중히 해야 하고, 글을 쓰는 것도 남에게 보이기 전에 고치고 또 고치는 정성이 필요하다. 한글을 맞춤법대로 말하고 쓰는 것은 사회적 약속이다. 따라서 이를 어기는 것은 운동 경기에서의 반칙과도 같다. 문제는 반칙을 하면서도 그것이 반칙인지 모르거나 심지어는 그 반칙을 멋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