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까까머리 소년은 처음 태극마크를 달며 ‘탁구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형”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담스러운 아저씨뻘 되는 선배들 틈에서 그는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큰 목표를 세웠다.
이제 그 벅찬 꿈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2004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에서 한국 선수로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유남규(금메달) 김기택(은메달) 이후 16년 만에 다시 결승에 오른 유승민(22·삼성생명).
22일 갈라치홀에서 열린 준결승에서 ‘백전노장’ 얀 오베 발트너(39·스웨덴)를 33분 만에 4-1로 꺾은 그의 얼굴은 “앗싸”라는 우렁찬 기합 소리만큼이나 자신감이 넘쳤다.
“발트너는 위대한 선수여서 마음을 비웠던 게 오히려 잘 풀렸다. 공격적으로 몰아붙이니까 위축된 것 같다.”
오른손 펜홀더 유승민은 경기 초반부터 파워 넘치는 드라이브로 발놀림이 무거운 발트너를 거칠게 몰아붙였다.
기선 제압 여부가 걸린 1세트에서 10-9까지 쫓겼으나 3구째 드라이브를 받아친 발트너의 공이 네트에 걸리면서 첫 세트를 따내 기분 좋게 출발했다.
발트너도 그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2세트를 따낸 것. 세트 스코어 1-1로 맞선 3세트. 유승민은 10-5까지 앞서 나가다 내리 4점을 빼앗겨 1점 차로 쫓겼지만 예리한 서브로 발트너의 리턴 실수를 유도해 다시 한발 앞서 나갔다. 기세가 오른 유승민은 4, 5세트를 잇달아 따내 승부를 결정지었다.
세계 3위로 4번 시드인 유승민의 23일 결승 상대는 세계 4위로 3번 시드인 왕하오(중국).
세계 최강 왕리친을 4-1로 제친 왕하오와의 상대전적은 1승6패. 1999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 때 한 차례 꺾은 뒤 성인대회에선 올해 5월 코리아오픈 준결승 패배까지 6연패를 당했다. 그러나 유승민은 후련한 설욕전을 펴겠다며 각오가 대단하다. 2002부산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삭발까지 한 끝에 남자 복식 금메달을 거머쥔 유승민은 이번 대회 직전에도 머리를 짧게 깎았다.
“왕하오는 이면타법의 1인자이지만 평소 훈련을 통해 충분히 대비했다. 얼마든지 해볼 만하다.”
1995년 내동중 1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힌 뒤 10년 가까이 태극마크를 달아 온 유승민. 그는 과연 한국 탁구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을까.
아테네=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