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왼쪽)이 23일 국회에서 당 상임중앙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당 중진들은 “과거사 규명도 해야 하지만 경제 살리기가 급하다” “경제가 망가지면 여당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경제 우선 목소리’를 냈다.- 김경제기자
열린우리당 중진 의원들이 23일 과거사 진상 규명에 총력전을 펴고 있는 당을 향해 일제히 “경제가 더 중요하다”며 쓴소리를 토했다.
그동안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과거사 진상 규명과 역사바로세우기는 경제 회생과 민생 안정을 위한 필수 요건”이라며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해온 것과는 다른 목소리다.
포문은 김혁규(金爀珪) 의원이 열었다. 김 의원은 이날 상임중앙위원회의에 참석해 “우리 당은 친일 진상 규명과 역사바로세우기에 열심인데 국민은 친일 진상 규명과 역사세우기도 중요하지만 우선순위를 잘못 잡은 게 아니냐고 생각한다”면서 “정치인들이 노력해야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는 게 국민 여론이다”고 꼬집었다.
김 의원은 이어 “친일 진상 규명과 역사바로세우기를 추진하더라도 경제 살리기에 우선 집중해야 한다”면서 “열린우리당과 정부가 경제 회생을 위한 노력을 더 보이지 않을 경우 열린우리당의 인기는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열린우리당은) 현실을 바로 보고 정치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채정(林采正) 의원은 “최대 과제가 경제문제인데 이를 언급하면서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당에서도 구체적인 대응책 마련에 진전이 없다”고 질타했다.
임 의원은 “경제 회생의 핵심은 노사관계다. 한나라당이 최근 제시한 네덜란드식 ‘노사정 대타협’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정부에 건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한길 의원도 “경제가 제일 급하다. 경제가 우선이며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고 거들었다.
이어 열린 당 정책 의원총회에서는 소신 있는 경제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강봉균(康奉均) 의원은 각종 기금의 주식투자 허용을 골자로 한 기금관리기본법 개정과 관련해 “우리 정직하게 말하자. 이번 법 개정안은 증시 부양을 위한 것이다”며 “기금이 증권시장에 유입이 안 될 경우 향후 5년간 증시 활성화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거시적인 차원의 소신을 갖고 일해야지 짧게 보면서 결정할 일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의총장 밖에서 만난 유재건(柳在乾) 의원은 “과거사 진상 규명도 필요하지만 지금 더 중요한 것은 경제문제”라면서 “경제가 망가지면 여당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역사바로세우기’의 물결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낮춰왔던 중진 의원들의 질타는 더 이상 경제 위기를 방치했다가는 집권당으로서의 지지 기반이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서는 경제 회생에 앞장서는 개혁정당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홍보전략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경제 회생과 민생 안정에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민적 지지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과거사 진상 규명 등 여권이 추진하는 개혁입법을 완수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김영춘(金榮春) 원내 수석부대표는 “과거사 진상 규명 등 개혁 작업과 경제살리기를 동시에 추진하지만 경제살리기를 우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부영(李富榮) 의장은 이날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과거사 청산문제는) 짧게 잡아도 1년은 걸릴 것”이라고 과거사 청산의 당위성을 거듭 강조한 뒤 “경제 살리기가 우선이다. 경제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뒷받침은 물론 각종 기금을 자본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기금관리기본법도 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