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년차인 정모씨(34) 부부는 최근 씀씀이를 크게 줄였다. 부부가 모두 외국계 회사에 다니지만 최근 경기침체 여파로 연말 보너스 지급이 불투명해지면서 미리 허리띠를 졸라맨 것. 이들 부부는 작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3∼5회 외식을 했지만 지난달부터 중요한 행사나 기념일이 아니면 외식을 하지 않는다.
정씨는 “줄인 외식비가 월 30만원 정도”라고 귀띔했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오락문화 외식비 통신비 등 꼭 쓰지 않아도 되는 지출이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안 먹고 안 쓴다’=2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4분기(4∼6월) 국내 가계의 최종 소비지출은 83조238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0.9% 줄어 2분기 연속 감소했다.
취미생활 등을 위한 오락·문화비는 6조1468억원으로 전 분기에 비해 13.5%, 외식과 장거리 여행 등을 위한 음식·숙박비는 6조1016억원으로 5.3% 감소했다. 휴대전화 등 통신비도 5조8361억원으로 4.9% 줄었다.
정씨는 “작년에는 매주 할인점에서 쇼핑했지만 올해는 월 2회로 줄이고 쇼핑목록을 미리 작성하는 등 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부품업체에 다니는 김모씨(37)는 “지난해 대출받아 집을 사 매달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 부담 때문에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교육비도 손댄다=A증권사 과장 성모씨(38) 부부는 지난해 매달 83만원가량 들어가던 두 자녀의 교육비를 올해부터 30만원으로 줄였다. 올해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그 전에 하던 영어학원, 수영레슨, 미술학원, 학습지 등을 모두 중단시켰다.
성씨는 “당장 회사가 적자를 내는 상황이어서 힘들더라도 씀씀이와 교육비를 줄이는 대신 저축을 더 하기로 했다”며 “큰아이는 수업을 충실히 듣는 방향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은에 따르면 교육비는 작년 4·4분기(10∼12월) 5조2726억원에 이르렀지만 올해 1·4분기(1∼3월) 4조4724억원, 2·4분기 4조3910억원으로 2분기 연속 감소했다.
교육비 감소는 경기침체의 영향도 있지만 중학교 의무교육 확대 등과도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2·4분기 술 담배와 의료 보건비 지출은 전 분기에 비해 각각 12%, 9% 늘어 경기침체에 따른 스트레스를 반영했다.
▽짠돌이형 소비 확산=23일 LG홈쇼핑에 따르면 디지털TV와 프로젝션TV에 밀려 판매량이 감소했던 소형 브라운관TV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작년까지 브라운관TV 중 ‘29인치 미만’과 ‘29인치 이상’ 제품의 판매비중은 13 대 87이었으나 올해 7, 8월에는 36 대 64로 소형 브라운관TV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세탁기 역시 드럼세탁기의 인기가 주춤한 반면 수조형 제품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LG홈쇼핑 신진호 과장은 “불경기로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가 높아진 이후 가전제품의 선호 트렌드마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이철용기자 lc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