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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투기꾼 1년에 2억달러 ‘꿀꺽’…투전판으로 변한 시장

입력 | 2004-08-24 18:18:00


《파산한 미국의 에너지기업 엔론 출신 존 아널드는 6억달러 규모의 헤지 펀드를 설립하고 원유 선물 투자에 나서 최근 1년간 2억달러를 벌었다. 석유업계의 베테랑 거래인 분 피켄스 역시 2개의 헤지 펀드를 통해 2년간 5억5000만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국제석유시장은 이처럼 ‘투기꾼의 천국’이 된 지 오래다. 투기꾼들의 성공 사례가 알려질 때마다 더 많은 투기꾼이 가담해 유가를 더 오르게 하는 악순환도 빚어지고 있다.》

실제로 ‘유가가 오를 것’이라는 쪽에 거는 거래(롱 포지션)에서 석유 실수요자가 아닌 헤지 펀드 등이 차지한 비중은 2002년 초의 13%에서 최근 28%로 크게 높아졌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23일 지적했다.

반면 유가가 내릴 것이라는 전망에 거는 거래(쇼트 포지션)에서 이들의 비중은 이 기간 28%에서 21%로 줄었다.

헤지 펀드에 이어 투자은행들도 원유 선물거래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씨티그룹의 펀드 ‘AAA 캐피털’은 올해 주로 원유 선물거래를 통해 24%의 수익을 냈고 영국의 바클레이스 캐피털은 엔론의 전직 석유거래인들을 대거 영입해 석유 시장에 본격 진출할 계획임을 밝혔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모건 스탠리는 앞으로 4년간 240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할 수 있는 권리를 7억7500만달러에 사들이겠다고 최근 발표해 현물사업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마이자르 라흐만 사무총장은 “최근 유가 급등은 중국 인도 등의 수요 증가가 근본 이유지만 이라크사태 등 지정학적 요인에 투기적 수요도 한몫했다”면서 투기에 따른 인상분을 “배럴당 10∼15달러”로 꼽기도 했다.

이들 투기꾼은 유가가 내릴 조짐이 나타나면 재빨리 손을 털고 시장에서 빠져나갈 것으로 보여 최근 급등했던 유가가 거꾸로 폭락하는 시장 교란이 나타날 수도 있다. 실제로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에 육박하자 투기적 거래는 다소 줄었다.

공급을 제때 늘리지 못해 유가상승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OPEC는 작년 말 기준으로 11개 회원국의 원유 매장량을 2002년보다 100억배럴(1%) 늘어난 8911억배럴이라고 23일 발표했다.

이날 뉴욕의 국제유가는 이라크의 수출 재개 소식 등에 힘입어 전날보다 배럴당 0.67달러 하락한 46.05달러로 거래가 마감됐다.

미국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유가 상승에 따른 에너지 등 상품가격 인상과 소비위축으로 3·4분기(7∼9월) 경제성장률이 3.6%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5월 조사 때에 비해 0.5%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