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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올림픽]복싱 4강 오른 정주에게 큰누나가 쓴다

입력 | 2004-08-24 18:42:00

19일 아테네 페리스테리복싱홀에서 열린 복싱 69kg급 16강전이 끝난 뒤 자리를 함께한 세 남매. 왼쪽부터 김정애(큰누나) 김정주 김미숙씨(작은누나).-사진제공 김정애씨


“저를 키워준 큰누나에게 메달을 걸어드릴 겁니다.”

“정주야, 이번 올림픽 끝나고 오면 맛있는 음식 많이 해줄게. 그동안 요리 실력이 조금 늘었거든.”

오누이는 서로를 끔찍이도 생각했다. 일찍 부모를 여의었지만 굳세게 지내온 날들이었다.

23일 아테네 올림픽 복싱 69kg급에서 8강전을 통과해 동메달을 확보하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한국에 8년 만의 복싱 메달을 선사한 김정주(23·원주시청)는 경기 후 가장 먼저 큰누나를 떠올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간암으로,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마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뒤 큰누나 김정애씨(30)가 그의 뒷바라지를 도맡아 해 준 덕분에 운동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 김정주는 28일 새벽 쿠바의 로렌조 아라곤 아르멘테로스와의 4강전을 앞두고 있다.

그리스에서 김정주가 누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자 이번에는 누나가 한국에서 김정주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김정애씨는 24일 “정주야 최선을 다해서 후회 없는 경기를 해라. 누나는 이 말을 가장 먼저 하고 싶다. 우리 여태 각자의 자리에서 잘 해 왔잖니”라는 격려의 편지를 본보에 보내왔다. 김씨는 “18일 아테네에 가서 5일간 머무르며 너를 본 것은 첫 경기(16강전)가 끝난 후 선수촌으로 돌아가기 전의 3분 남짓. 경기 내내 네가 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였는데, 그날 아침 배탈이 났었다는 말을 듣고 걱정 많이 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끝까지 해낸 네가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어머니마저 떠나신 뒤 내가 직장생활 때문에 바빠서 제대로 된 음식 한 번 못해준 게 항상 마음에 걸린다”며 안쓰러운 마음을 전했다.

운동을 하며 힘들었던 순간도 떠올렸다. “네가 고등학교 때 경상대에서 열린 경기를 본 적이 있다. 그때 네가 많이 맞고 졌을 때 너무 속상해서 누나는 너 몰래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울었다. 맞는 것도 억울했고 네가 진 것도 억울했다. 그때 네가 슬럼프에 빠져 걱정했는데 고3 때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멋지게 따내 자랑스러웠다….”

무엇보다 동생의 성실한 훈련 자세를 칭찬했다. “지난해 내 결혼식날 집에 와서도 새벽같이 일어나 운동하고 체중 조절하느라 음식도 제대로 못 먹고 갔었지. 그렇게 자신과 싸우면서 열심히 해 온 운동이니만큼 꼭 좋은 결과를 맺으리라 본다.”

편지는 파이팅 구호로 끝을 맺었다.

“누나는 벌써 동메달을 확보한 것만 해도 자랑스럽다. 남은 경기도 잘해 주길 바란다. 김정주 파이팅.”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