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대기자
‘불운 전문배우’ ‘눈물의 여왕’ ‘리틀 정윤희’.
소매치기 4범인 딸과 전직 경찰관인 아버지의 애증을 그린 ‘가족’으로 영화계에 데뷔하는 수애(본명 박수애·24).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늘 눈물 자국을 찾는다. ‘러브 레터’ ‘회전목마’ ‘4월의 키스’ 등 그가 TV드라마에서 보여준 불행과 상처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영화 ‘가족’도 눈물을 왈칵 쏟게 하려고 작정한 작품이다. 20일 서울 세종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 “촬영하며 아빠 생각 많이 했어요”
“이거 어때.”
“선생님, 쿨하고 멋있어요.”
극중 아버지 주석(63·주현)과 정은(수애)은 어느 날 촬영을 앞두고 이런 대화를 나눴다. 백혈병에 걸린 것으로 설정된 주현이 망설이다 삭발한 뒤 수애에게 물은 것. 환갑을 넘긴 대선배가 작품을 위해 삭발한 모습을 본 수애의 마음에는 놀라움, 존경심, 고마움이 겹쳐졌지만 대답은 이 같이 신세대형으로 툭 튀어나왔다.
그는 영화를 찍으며 주석의 얼굴에 자신의 아버지 얼굴이 자주 겹쳐졌다고 했다.
● “탤런트 되겠다며 아버지 많이 괴롭혔죠”
“엄마에게는 ‘사랑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아빠에게는 한번도 못했어요. 마음은 그렇지 않았는데….”
왠지 부담스럽고 가깝지 않던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너무 작고 늙고 초라해 보였다.
“중3 어느 날 등교를 서두르며 아침밥을 먹다가 문득 바라본 아빠 얼굴에 갑자기 왜 그리 주름이 많던지….”
그 딸은 공부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댄스그룹으로 활동한다, 탤런트가 되겠다며 아버지를 괴롭혔다. ‘못된’ 딸이 기억해낸 최근의 효도는 열흘 전 쯤 직접 아버지 밥상을 차려드린 것과 ‘건강 챙기시라’며 등산화를 선물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 그가 출연하는 드라마 녹화는 아버지의 몫이 됐다.
● “영화 촬영 내내 눈물과 싸웠어요”
지난해 ‘가족’의 시나리오를 처음 읽으며 울다가 곧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TV 드라마에서는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비운에 울었어요. 그러나 영화 ‘가족’에는 아버지와 어린 남동생 말고는 ‘남자’가 없어요. 극중 정은은 가족의 불행에 울지만 독립적이고 강하죠. 울어도 ‘눈물의 색깔’이 다른 셈이죠.”
하지만 영화 촬영은 내내 ‘눈물과의 전쟁’이었다. 작품 자체가 슬픈 만큼 배우들은 눈물을 아껴달라는 게 이정철 감독의 주문이었기 때문이다.
“눈으로 울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너무 울어 가슴이 ‘먹먹’ 했어요.”
● “화면에선 예쁘지 않지만 괜찮아요”
첫 영화를 찍으며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욕망은 포기했다. 터프한 정은의 분위기에 맞추느라 눈 화장은 말할 것도 없고 립스틱도 바르지 않았다. 치마 한번 입을 수 없었다.
“원래 화면에서 예쁘게 나오는 편이 아녜요. 처음에는 속상했는데 지금은 담담해요.”
뜻밖에 자신의 얼굴에서 귀가 가장 마음에 든다는 수애는 정말 실물이 훨씬 예쁜 배우다.
“설경구씨의 ‘오아시스’와 장만위(張曼玉)의 ‘첨밀밀’이 제가 본 최고의 영화예요. 두 배우처럼 치열하게 내면의 세계를 전하고 싶어요.”
‘가족’은 9월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