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한 선수들이 공동 입장한 것은 남한과 북한이 하나임을 국제사회에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반면 지난달 말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집단 입국한데 대해 북한은 ‘계획적 납치 테러’라며 비난했다. 이처럼 남북한 간에는 늘 화해와 대립이 공존한다. 우리의 반쪽, 북한은 어떤 존재이며 우리는 북한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할까.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김명섭 교수(43)가 서울 오산고에서 김찬기(16) 신건준(17) 심재엽(16) 이건형(17) 이장한(17) 최종혁(16) 함창식군(17) 등 2학년 학생들과 남북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산고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남강 이승훈(南岡 李昇薰) 선생이 1907년 평북 정주에서 건립한 학교로 함석헌 선생 등 민족지도자와 시인 김소월, 백석 등의 문인들을 배출했다. 6·25전쟁 중 피난 내려왔으며 1955년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새 교사를 마련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북한을 더 잘 이해하려면
▽김명섭 교수=지난해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한 북한 여성응원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인쇄된 플래카드가 비에 젖은 것을 보고 울면서 이를 끌어내렸던 사건을 접하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김찬기=굉장히 황당했어요. 같은 민족인데 이처럼 생각의 차이가 크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죠.
▽심재엽=통일되면 이런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날 텐데, 북한의 관습과 문화를 좀더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 교수=북한 사람과 함께 일해 본 경험이 있는 남한 기업인들은 처음에는 언어가 통하는 북한 사람들을 반가워하지만 나중에 생각이 너무 달라 자주 부딪히게 된다고 해요.
▽이장한=북한 사람은 가난하고 촌스러워서 함께 살기 어렵다는 말을 하는 친구도 있어요. 하지만 6·25전쟁을 경험한 세대에 비해 젊은 세대일수록 북한에 대한 반감은 적어지는 것 같아요.
▽최종혁=학교 행사의 일환으로 금강산과 공동경비구역(JSA)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금강산에서 북한 사람과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금지돼 있어서 통사정 끝에 겨우 찍을 수 있었어요. 북한은 매우 억압된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죠. 반면 공동경비구역의 남북한 회의소에서 만난 북한 학생들이 먼저 자유롭게 손 흔드는 모습을 보며 진짜 북한의 모습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웠어요.
▽신건준=북한을 보다 사실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 교수=탈북자들의 남한 정착을 돕는 시설인 ‘하나원’이나 시민단체 등에서 그들을 도우면서 대화하다 보면 북한 현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 통일은 북한 경제력 일정정도 성장한 후에
▽심재엽=통일되면 한 명의 국가 원수를 정해야 할 텐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김 교수=유럽연합(EU)과 같이 두 지역을 통치하는 대통령을 각각 두고 그 위에 협의체를 만들어 위원장을 공동으로 선출하는 것이 어떨까요. 하지만 위원장을 남북한의 어느 쪽 인물로 결정할지 합의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김찬기=일각에서는 통일되면 남한의 기술력과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할 수 있어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해요. 하지만 통일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경제상황이 더 나빠질 가능성은 없나요?
▽김 교수=북한은 시장경제체제를 거부한 결과 오늘날과 같이 폐쇄적인 상황에 이르렀어요. 세계적인 시스템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어 한국이나 외국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죠. 북한 동포를 도울 때 중요한 것은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일입니다. 통일은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 시민사회가 반핵운동으로 북핵압력 가해야
▽함창식=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미국이 견제하는 등 긴장이 계속되고 있어요. 핵무기가 한반도 통일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김 교수=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핵을 강제로라도 제거해야 통일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오히려 전쟁을 유발할 위험이 높아요. 반대로, 통일되면 북한 핵이 민족 공동의 핵이 된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 역시 단편적인 생각입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민사회 차원에서 반전반핵의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어요.
▽이건형=경제 수준을 비롯해 남북한은 너무 많은 차이가 납니다. 젊은 세대는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적어진 만큼 관심도 줄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통일은 더욱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김 교수=통일의 모습을 다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하나의 국가, 하나의 가치관을 정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불가능할 뿐더러 바람직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엄청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지요. 하나가 돼야 한다는 통일에 대한 집착은 남북한 모두에게 있습니다. 평화가 전제되지 않고 오히려 평화를 깨뜨리는 통일은 반민족적이고 위험하다는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세대 김명섭 교수(가운데)가 서울 용산구 보광동 오산고에서 2학년 학생들과 남북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 교수는 “남북이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적 아니면 친구라는 이분법에서부터 벗어나야한다”고 강조했다.- 박주일기자
정리=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강연요약▼
1953년 7월 27일 6·25전쟁이 막을 내리고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같은 분단국이라도 동서독은 민족간에 전쟁이 없었지만 남북한은 무려 3년간의 처절한 전쟁을 통해 서로에게 큰 아픔을 남겼다.
휴전 후 남북한은 체제 우월성 경쟁에 들어갔다. 이제 경제적 측면의 경쟁은 끝났다.
남북 관계에서 북한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남북관계에서는 두 가지 편향된 시각이 존재한다. 하나는 반공 반북 제일주의로 북한에 대해 무엇이든 반대하는 입장이다. 북한 동포를 구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러한 입장에서 비롯됐다. 다른 하나는 민족의 이름으로 북한에 대해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입장이다.
이 두 가지 모두 한국의 기준에서 북한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북한에 대한 실제적 이해를 가로막고 있다.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집권층과 주민 등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밑바닥부터 최상층까지의 모습을 모두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탈북자들을 통해 북한을 보다 사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다.
남북한을 무리하게 하나로 보려 하면 상대를 부정해 결국 흡수통일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준비 없는 통일은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때문에 하나이면서 둘일 수 있다는 ‘통이(統二)’의 개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EU)처럼 남북한이 통합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남과 북이 모두 적 아니면 친구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서로를 바라봐야 한다.
▼남북관계 이해를 돕는 책▼
▽DMZ(박상연·민음사·1997년)=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원작이 된 소설. 판문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을 통해 분단의 의미를 재조명.
▽독일은 통일되지 않았다(이해영·푸른숲·2000년)=통일된 독일의 사례연구를 통해 모든 통일은 옳은지, 어떤 통일이 올바른지에 대한 고민을 보여줌.
▽사람의 통일을 위하여(전우택·오름·2000년)=정신과 전문의가 쓴 우리 내면의 분단에 대한 성찰.
▽DMZ의 봄(주성일·시대정신·2004년)=비무장지대에서 근무한 북한군 병사의 체험을 통해 북한 현실에 대한 이해를 시도.
▽북한인권과 유엔 인권 레짐(최의철·통일연구원·2002년)=남북화해협력의 깃발 아래 외면할 수 없는 북한인권 문제와 이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을 담음.
▽한반도 평화와 군비통제(한용섭·박영사·2004년)=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민족이 되기 위한 꿈과 논리를 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