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가 석유수출을 재개한 데 이어 미국 정부가 전략비축유(SPR)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25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선물 가격은 전날에 비해 배럴당 1.74달러(3.8%) 하락한 43.47달러로 마감했다. 배럴당 44달러 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이달 6일 이후 처음이다. 이로써 장중 사상 최고치였던 20일의 49.40달러에 비해 5일 만에 배럴당 6달러가량이 하락했다.》
영국 런던의 국제석유거래소(IPE)에서도 이날 10월 인도분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이 전날에 비해 배럴당 1.64달러(3.9%) 하락한 40.68달러로 장을 마쳤다.
이날 NYMEX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기록적인 유가 상승에 따른 정치 경제적 우려를 줄이기 위해 6억6700만배럴에 이르는 전략비축유를 방출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져 유가 하락을 이끌었다.
전략비축유 방출 가능성은 24일 스펜서 에이브러햄 미국 에너지 장관과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클로드 만딜 사무총장의 회동을 계기로 점쳐지기 시작했다. IEA는 주요 선진국들의 전략비축유를 관리하고 있다. 현재 재고는 14억배럴.
그동안 미국 정부와 IEA는 전략비축유를 단순히 유가 진정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심각한 공급차질이 빚어질 때만 사용하겠다는 원칙을 밝혀 왔고 지금도 이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딕 체니 미국 부통령도 24일 “주요 원유 공급국의 공급차질이 빚어지면 전략비축유가 방출돼야 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수준의 말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석유시장에서는 이 발언에 미국 정부의 의지가 실린 것으로 해석했고 이에 따라 유가 하락폭이 커졌다.
이처럼 민감한 반응이 나온 것은 유가가 50달러 선을 넘어서지 못한 채 급락할 가능성을 우려한 투기꾼들이 갑자기 ‘팔자’로 돌아섰기 때문이라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진단했다.
래리 골드스타인 석유산업연구재단 이사장은 “미국 정부가 전략비축유 확보를 중단하기만 해도 하루 10만배럴이 시장에 추가 공급된다”면서 “이는 미국의 하루 소비량 2000만배럴에 비하면 적은 양이지만 국제 투기꾼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유가가 투기꾼들과 미국 정부의 힘겨루기에 따라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다.
그러나 ‘전략비축유 카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나오고 있다. 전략비축유는 방출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방출 영향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 특히 방출할 경우 산유국들의 감산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유가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애널리스트 피터 부텔은 “배럴당 50달러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며 47∼48달러 선으로 금세 되돌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다른 애널리스트 존 퍼슨은 “돌출 악재가 없다면 당분간 배럴당 45달러 선을 오르내리다 배럴당 40달러 선까지 떨어지고 연말에는 30달러대 초반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