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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인간을 넘어서’…삶을 묻고 죽음을 답하다

입력 | 2004-08-27 17:21:00

198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본의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의 한장면. 칠순이 되면 노인을 산에 버리는 일본 산골 마을 전통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늙음’과 ‘시간’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 두 학자의 대화에 자주 등장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인간을 넘어서/나카무라 유지로·우에노 치즈코 지음 장화경 옮김/335쪽 1만2000원 당대

일본의 두 학자가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이다. 한쪽은 40대 여성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 도쿄대 교수이며 또 다른 한쪽은 60대 남성 철학자 나카무라 유지로(中村雄二郞) 메이지대 교수다. 사적인 편지가 아니라 출판사측의 의뢰로 두 사람이 2년간 월간지를 통해 주고받은 공개편지다.

굳이 분류하자면 수필이겠지만 철학서 못지않은 품격이 있다. 경어와 고백체의 문체는 담백하며 한쪽이 던진 생각에 대해 상대방은 무슨 답변을 줄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마음의 양식이 되면서도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두 사람은 ‘늙음’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한다. 마흔을 앞에 둔 우에노 교수가 늙음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면서 포문을 연 것. 두 사람은 늙음은 추하고 건강만이 유일한 인간 모델로 간주되는 세태를 한탄하면서 ‘늙음’의 긍정성에 공감한다.

‘너무 건강하거나 강하기만 한 것은 바람직하지도 인간적이지도 않습니다. 늙으면, 사회적 약자의 입장이나 고통을 단순히 타인의 일로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약함을 자각한다는 것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 그것도 시간적인 유한성을 자각한다는 것과 관계가 있지요.’(나카무라)

‘늙음은 천천히 진행되는 죽음입니다. 이 늙음이 특정한 나이부터 혹은 병에 걸린 다음부터 갑자기 시작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인간은 늙음을 잊어버리고 있을 뿐이지요. 죽음처럼 ‘늙음’도 인간 개개인이 다 다를 수밖에 없는 고유영역이 아닐까요.’(우에노)

두 사람은 동서와 고금을 오가는 해박한 지식과 차가운 이성으로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에 대해 날카롭게 분석한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삶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는다. 자신의 삶과 지식을 함께 성숙시키는 진정한 의미의 교양인이 주고받는 글이란 바로 이런 글이 아닐까.

나카무라 교수가 아내의 위암 투병 사실을 전하면서도 담담하게 관조하는 글을 적어 보내자 우에노 교수는 존경과 위로의 말을 보낸다.

‘(아내의 투병으로) 건강을 믿고 오로지 앞뒤 돌아보지 않고 살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쪽 편 빛에 의해 오히려 감춰져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 저쪽 편 빛에 의해 떠오르게 된다고나 할까요. 역광(죽음) 속에서 삶을 보면 우리 삶은 보통 때보다도 더 사랑스럽고 밀도 있고 에로틱해 보입니다.’(나카무라)

‘자식이 없어서 그런지 어떻게 해서든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을 때, 저는 일종의 평정과 내 눈앞에 전개되는 것을 모두 받아들이고자 하는 긍정에 찬 경험을 합니다.’(우에노)

상대방 의견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되 공손하면서도 논리적으로 답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듣기’가 사라진 이 시대에 남다른 울림을 준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훈련에 관한 책이며 교감과 소통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원제 ‘人間を超えて―移動と着地’(1994년).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