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크라이튼. 테크노 스릴러 ‘먹이’의 마지막 손질에 들어간 2002년 여름에는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열세 살 난 딸과 함께 있다가 무장 강도를 당하기도 했다. 그는 “에릭 드렉슬러가 1986년 나노기술에 대해 쓴 ‘창조의 엔진’을 읽고 이 작품의 공학적 얼개를 그렸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먹이 1, 2/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김진준 옮김/1권 276쪽(7900원), 2권 320쪽(8900원) 김영사
마이클 크라이튼은 유전공학이 떠오르던 1990년 “공룡을 복원시킨다”는 발상의 ‘쥐라기 공원’을 펴냈다. 광자 원격이동 실험이 잇따라 성공하던 1999년에는 “인간을 양자 차원의 정보로 분리해 팩스처럼 과거로 보낸다”는 아이디어로 ‘타임 라인’을 선보였다.
이번에는 10억분의 1m(1nm·나노미터)의 세계, 곧 원자의 세계를 다룬다는 나노기술이 소재다. 크라이튼은 지금까지 첨단과학이 만들어 낸 새로운 ‘프랑켄슈타인’을 만듦으로써 작품 전반에 팽팽한 스릴의 기운이 흐르도록 조절해 왔다. ‘쥐라기공원’에서 그 괴물이 티라노사우루스였다면 이번에는 나노기술로 만들어진 나노로봇들이다.
실직자가 된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 잭 포먼은 ‘아무래도 바람이 난 것 같은’ 과학자인 아내 줄리아가 교통사고로 부상당한 후에 아내 회사 자이모스로부터 심각한 요청을 받는다. 줄리아가 다루다가 우연히 연구소 바깥으로 빠져나가 버린 나노로봇의 집합체인 나노스웜(떼)을 회수해 달라는 것이다.
물론 이야기가 풀려 가면서 낯익은 장면들이 스쳐 간다. 줄리아가 이상하게 변한 모습은 ‘쥐라기공원’이나 ‘타임 라인’의 초입부에 나오는 ‘이상하게 숨진 변사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포먼이 네바다 황무지의 외딴 자이모스 연구소로 향하는 장면은 일군의 과학자들이 코스타리카의 외딴 섬으로 찾아가는 ‘쥐라기공원’의 한 장면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크라이튼은 자신이 새로 만든 괴물을 자신만만하게 내보인다. 나노기술에 대한 공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설명과 함께.
나노로봇 하나하나는 인간의 세포보다 작아 “공기의 점성을 타고 움직일 정도”다. 하지만 이들이 자체 번식해 만들어진 나노스웜은 길이가 자유자재로 늘어나고, 몸무게 500kg의 외형에 토네이도처럼 소용돌이칠 수 있다. 게다가 ‘집단 지능’을 갖추고 급속히 학습하며, 3시간마다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 눈부시게 진화한다. 이들이 살아 있는 (단일한) 맹수처럼 ‘먹이’들을 농락하다가 처참하게 끝장내는 장면들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크라이튼은 첨단과학에서 움트는 ‘재앙’의 조짐을 ‘인공 괴물’들의 포악한 동작으로 탁월하게 형상화해 왔는데, 그 기량이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되는 것이다.
크라이튼은 “인간 역시 어쩌면 나노스웜이 아닌가” 하는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진다. 무수한 세포로 만들어졌으면서 단일한 의식을 갖추고 있는, 그러면서도 그 의식이 빗나갈 때는 가공할 재앙을 불러오는 나노스웜 말이다. 원제 ‘Prey’(2002).
권기태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