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치러진 수능시험은 이전보다 어렵게 출제됐다. 채점 결과 상위 50% 수험생들의 평균 점수가 60점 이상 하락했다. 이듬해 봄 강남지역에선 부동산값이 뛰기 시작했다. 강남에서 자녀를 교육시키려는 이주 수요가 급증한 탓이다. 하지만 우연히 발생한 일은 아니었다. 강남의 교육여건은 이전부터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었고 어렵게 출제된 수능시험은 하나의 계기에 불과했다.
▷중국의 맹모(孟母)처럼 학부모들은 좋은 환경에서 자식을 교육시키려는 욕구를 갖고 있다. 강남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학력을 지닌 학생들이 많이 몰려 있고 이들이 함께 공부하면서 상승효과를 낳았다. 그러자 다른 지역에서 교육열이 높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주변 학원도 활성화된 것이다. 요즘 지자체들이 주민의 생활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교육여건 조성에 눈을 돌린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강남과 같은 ‘교육 특구’를 전국 여러 곳에 만들어 내야 한다. 이런 게 진짜 국가 균형발전이다.
▷확 바뀐 입시제도가 강남 집값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강남의 교육여건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학입시의 합격은 누가 한 점이라도 더 얻느냐로 결정된다. 소수점 이하의 근소한 차로 고배를 마시는 사례도 많다. 내신점수가 낮게 나올 수밖에 없는 강남 학생들에게 새 입시제도는 불리한 점이 많아 보인다.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유리해졌다. 강남 집값에도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다. 여러모로 강남을 겨냥한 입시제도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문제는 교육을 바라보는 이 정부의 시각이다. 그나마 신빙성 있는 전형자료였던 수능시험을 무력화하고, 본고사는 말도 못 꺼내게 대학의 입을 막아버렸다. 교육의 형평성을 내세워 통제로 가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도 교육정책에선 자율과 경쟁을 강조하고 있다. 때늦은 통제정책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교육은 개인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것이다. 교육의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교육정책이 통제로 가는 것은 한국 교육의 침몰을 자초하는 길이다. 강남 문제를 떠나 나라의 어두운 미래가 걱정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