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청산 문제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시각은 매우 심층적이고 다양했다. 그러나 정치권력의 개입은 배제돼야 하고 성찰적 고백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왼쪽부터 윤경로 한성대 교수, 이영훈 서울대 교수, 임지현 한양대 교수. 박영대기자
《정치권이 과거사 청산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친일진상규명특별법 개정 등을 통해 근 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을 역사의 법정에 세우겠다며 벼르고 있는 반면, 야당은 친북 용공문제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 문제가 지나치게 정치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역사학자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경로 한성대 교수(한국근현대사), 근대화론의 시각에서 식민지시대를 조명해 온 이영훈 서울대 교수(경제사), 그리고 유럽의 과거사 청산 문제를 연구해 온 임지현 한양대 교수(서양사)가 좌담을 통해 이 문제를 짚어봤다.》
▽윤경로=과거사 청산은 한번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첫째, 역사화작업을 위해 필요하다. 역사는 자랑스러운 것만이 아니라 부끄러운 것도 기록해야 한다. 개항 이후 8·15광복까지 우리 역사는 ‘저항과 투쟁의 역사’, 그리고 ‘훼절과 순응의 역사’로 나눌 수 있다. 광복 이후 근 현대사 연구는 우리의 긍정적 측면, 즉 전자만 부각해 왔다. 내년이면 광복 60주년이다. 이제는 부끄러운 역사도 기록할 만큼 우리 사회도 성숙해졌다. 둘째, 역사는 고백하는 것이어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사실대로 고백할 때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가능하고 구성원간의 일치감이 생길 수 있다. 셋째,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항의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내부의 허물까지 역사화 할 수 있는 성숙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영훈=진상규명이라고 한다면 뭔가 흐릿하고 잘 알 수 없는 사안을 밝혀낸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의 큰 흐름에서 일제 협력자들의 무엇이 가려져 있는가. 총독부 직원록 등 일제강점기 기록을 통해 3만∼4만명가량의 친일 부역자들이 있었다는 점, 광복 후 반민족행위처벌법으로 이들을 처벌하려다 너무 광범위하고 구조적 문제라서 포기했다는 점 등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거시적으로 뚜렷이 드러난 사실을 국가가 나서서 미시사적 차원으로 끌고 들어가 ‘배반과 굴절’의 역사를 만든 사람들을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역사는 재판정에서 단죄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 다층적이고 복합적 흐름을 성찰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임지현=과거를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기억하는 것, 특히 고백의 형태로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친일진상규명특별법처럼 이를 인적 청산의 문제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과거 청산이 나치 전범과 독일에 대한 협력자 처벌 같은 인적 청산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결국 소수 인사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우고 다른 이들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나치 점령기간 프랑스인의 95%가 나치의 반유대정책을 지지했다. 과거를 고백하는 형태가 아니라 인적 청산의 형태로 갔기 때문에 그 후 프랑스가 알제리와 베트남에서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이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부끄러운 역사도 집단적 기억의 형식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엔 동의한다. 문제는 그 주체가 누구냐다. 그것은 시민사회와 그 일환으로서 역사학자의 몫이 돼야지 정치적 의도를 지니고 움직이는 국가권력이 법률을 갖고 개입해선 안 된다. 역사는, 민중의 집단적 기억체계로서의 역사와 엄밀한 사료로 이를 실증적으로 검증하는 전문적 역사라는 2가지 차원의 긴장관계로 구성된다. 역사학자는 사료와 실증에 기반을 두기에 비정치적이지만 국가권력은 투표행위로 집권을 하는 만큼 집단적 기억체계에 의존한다. 특히 한국의 역대정권은 역사를 바로 세운다, 역사를 청산한다는 식으로 대중의 집단적 기억체계를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 왔다. 정부는 국가 정통성 보위차원에서 역사연구를 지원해야지 역사를 함부로 전유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임=국가권력이 주체로 나서는 것도 문제지만 그 태도도 문제다. 과거사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는 측의 태도는 ‘나는 이만큼 싸웠기 때문에 정의롭고, 따라서 심판관 자격이 충분하다’는 식인데 이는 오만한 자세다. 이런 태도는 불필요한 정쟁만 유발할 뿐이다. ‘나도 순응하고 타협했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이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성찰적 자세를 지니고 역사 드러내기를 시도한다면 건강한 사회적 기억을 남길 수 있다. 또 과거사 청산의 기준을 친일이냐 반일이냐 하는 민족 키워드로 접근하기보다는 인권의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장교는 소위 이상, 경찰은 경시(현 총경) 이상이면 친일파라는 범주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실제 당시 한반도 주민의 인간적 권리를 어떻게 침해했느냐는 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윤=역사학이 역사학자의 지적 만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 전체에 교훈을 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가에서도 이를 지원하되 간섭하지는 말아야 한다. 과거사 진상 규명의 본질은 역사적 교훈을 삼자는 것이지, 그 후손들에게 책임을 묻자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연좌제라는 비본질적 문제에 더 신경 쓰고 있다. 과연 내가 그 시대를 살았더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나도 자신 없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스승인 하이데거를 비판하면서 “훗날 태어난 사람의 특권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역사는 엄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논리로 설명하면 합리화 안 될 것이 어디 있겠는가. 역사문제를 단순화해서도 안 되지만 모든 것을 다 고려하자면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독일이나 프랑스도 한번쯤 청산이 이뤄졌기에 비판도 나오는 것 아니냐. 전 단계를 거치지 않고 비판부터 하는 것은 잘못이다.
역사학자 3명의 시각은 삼인삼색이었지만 나름대로 심층적 고민이 담겨 있었다. 이영훈 교수는 현 단계에서의 과거사 청산에 대해 강한 회의를 표했고, 윤경로 교수와 임지현 교수는 청산의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그것이 인적 청산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에 대해선 찬반으로 갈렸다. 세 학자가 동의한 점은 정치권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또 이 일이 역사 앞에 지극히 겸허한 자세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리=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