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상대하는 의사도 사람인지라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 혹은 가족이 아파 보호자 자격으로 병원을 찾기도 한다. 환자 또는 보호자로서 다른 의사를 대하는 순간은 의사인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얼마 전 아이에게 감기 기운이 있어 집 근처 개인병원을 찾았다. 대기실은 보호자와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접수한 뒤 반시간 이상이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접수대로 가서 간호사에게 사정을 얘기하자 그는 잠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아이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김○○”라고 대답하자 간호사는 “아까 이름을 불렀는데 대답이 없어 다음 사람부터 진료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대기실 안은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떠들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 간호사의 호명 소리를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시 순서를 기다린 끝에 겨우 진료실에 들어섰다.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 의사는 매우 ‘직업적인’ 말투로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 “언제부터 아팠느냐”며 문진을 했다. 그의 말과 행동 어디에서도 몸이 아픈 어린 환자를 위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픈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환자는 자신의 건강 상태에 매우 민감한 상태이기 때문에 의사는 자잘한 것까지 가능한 한 자세히 되풀이해서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또 아픈 사람들은 대부분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작은 일로도 짜증을 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의사와 간호사라는 직업이 세일즈맨 이상의 서비스정신으로 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환자들을 상대하다 보면 소홀해지기 쉽다. 하지만 많은 환자를 대하다 보면 이런 작은 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수많은 진료 경험보다 환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진정한 ‘의사’를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
김광범 인천삼성안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