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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입력 | 2004-09-01 17:52:00


彭城에 깃드는 어둠(13)

한(漢) 2년 시월 항왕으로부터 그와 같은 글을 받은 구강왕(九江王)과 형산왕(衡山王), 임강왕(臨江王)은 잠시 망설였다. 그들도 옛 초나라의 유민(遺民)들이라 옛 왕실의 핏줄 앞에서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 세 왕은 오래 머뭇거리는 법 없이 항왕의 명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이미 4년 전 처음 기의(起義)할 때의 그 순진한 유민군(遊民軍)의 우두머리는 아니었다. 전란을 통해 힘의 원리에 익숙해지고, 권력과 그에 따른 부귀에 한참이나 맛을 들인 패왕 측근의 제후(諸侯)들이었다.

항왕의 글이 이른 지 사흘도 안돼 장사(長沙)를 둘러싸듯 하고 있는 세 땅의 왕이 일시에 군사를 내어 사방에서 에워싸듯 의제를 몰아댔다. 이름이 좋아 황제이지 의제는 그중의 하나도 제대로 막아낼 힘이 없었다. 한 번 맞서보지도 못하고 사냥꾼에게 쫓기는 짐승처럼 놀라 허둥대다가 겨우 배 한 척을 구해 물길로 달아났다.

세 왕 중에서도 구강왕 경포(경布)에게는 원래부터 강수(江水·양자강) 물가에서 수적(水賊)질하던 솜씨가 있었다. 날랜 배를 내어 뒤쫓게 하니 변변한 호위조차 없이 달아나던 의제로서는 벗어날 길이 없었다. 강수 한가운데서 사로잡힌 의제는 아무도 모르게 죽음을 당하고 그 시체는 물속 깊이 던져졌다.

경포가 천연덕스럽게 그런 글을 올리자 항왕은 이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비로소 마음 놓고 팽성을 떠나 제나라를 치러갈 군사를 일으켰다. 그때 다시 항왕의 출발을 재촉하는 소식이 들어왔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