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숲. 거기 가야 해요.” 뇌수술 후 14일만에 깨어난 강민이 불완전한 기억을 좇으며 현실과 과거를 재구성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거미숲’. 사진제공 오크필름
3일 개봉되는 ‘거미숲’은 이상한 퍼즐 같은 영화다. 조각 몇 개는 뒤틀려 있고, 몇 개는 다른 퍼즐의 조각과 뒤바뀌었으며, 몇 개는 같은 조각만 여러 개이고, 또 다른 몇 개는 아예 없는 퍼즐 말이다.
송일곤 감독(‘꽃섬’ 연출)은 최근 한 시사회장에서 “이 영화가 어려울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꿈을 들여다본다는 심정으로 봐 달라”고 말했지만, 엄밀히 말해 ‘거미숲’은 ‘어려운’ 영화가 아니라 ‘어지러운’ 영화다. 현재와 과거, 다시 현재와 더 전의 과거를 오가며 구성되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이 얘기 저 얘기 아귀를 끼워 맞춰 정답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의 장면이 던지는 강렬한 이미지를 모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태도다.
아내와 사별한 강민(감우성)은 초자연적 현상을 추적하는 TV 프로그램 PD. 어느 날 그는 신비한 전설의 숲인 ‘거미숲’에 관한 제보를 받는다. 거미숲을 찾아 나선 강민은 사진관을 운영하는 수수께끼의 여인 민수인(서정)을 만난다. 거미숲에 들어간 강민은 산장에서 시체 2구를 발견한다. 놀랍게도 한 사람은 강민을 구박하던 같은 방송사 국장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강민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아나운서 황수영(강경헌)이었다. 누군가의 습격을 받아 정신을 잃은 뒤 깨어난 강민은 다시 터널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그는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강민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미스터리 스릴러의 장르적 틀을 빌려온 ‘거미숲’은 복잡한 편집을 통해 스릴러가 갖는 속도감을 스스로 해체시켜 버리고, 아주 치밀한 방식으로 ‘비논리적’으로 보이려 한다. 왜 강민의 기억 속 여인은 뒷모습만 보여줄까. 왜 같은 여자의 얼굴이 죽은 아내에서 황수영 아나운서로 바뀔까. 강민을 뒤따르는 남자는 누굴까. 의문을 품으면 끝이 없지만, 송 감독은 기본적으로 진실게임보다는 기억의 불완전성이나 혼란, 정신적 외상에 의해 과거(혹은 진실) 자체가 여러 개의 ‘버전’을 갖게 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감우성은 ‘알 포인트’에 이어 이 영화에서도 차가운 매력을 발산한다. 쇳소리가 나는 그의 목소리는 딱딱 끊어서 발음할 때 이상하게도 성감을 자극한다. 죽은 아내와 민수인 1인 2역을 연기한 서정은 여전히 존재감이 강렬하며,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 같은 TV 드라마에 출연해 소리 소문 없이 자신을 알려온 강경헌은 이 영화 속 섹스 신을 통해 억압에 짓눌린 여자의 등이 얼마나 찰지고 아름답고 치명적인지 보여준다.
궁금하다.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가 아닌, ‘재밌는 영화’와 ‘재미없는 영화’만이 존재하는 대중의 취향 속에서 스릴러의 옷을 입은 작가주의 영화 ‘거미숲’이 과연 다음과 같은 관객의 간단명료한 질문을 통과할 수 있을지 말이다. 그 질문은 바로 이거다. “So What?(그래서 뭐가 어쨌단 거야?)”
스페인 산세바스티안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작. 18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