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둥이로 돌아온 ‘악바리 여전사’“역시 집이 최고예요.” 2004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신화의 주역 이상은이 1일 모처럼 집에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했다. 이상은은 “체격이 큰 외국선수들과의 경기가 끝나면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파스로 도배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인천=전영한기자
2004 아테네 올림픽의 마지막을 뜨겁게 달군 한국 여자 핸드볼대표팀의 주장이자 ‘핵 슈터’ 이상은(29·효명종합건설). 그는 올림픽이 끝난 뒤 갑자기 유명인사가 됐다.
● 식당가도 택시타도 ‘그냥 가세요’
“어제 친구랑 삼겹살을 먹었는데 식당 주인이 돈을 안 받더라고요. 옆자리 아저씨는 음료수도 시켜주고, 택시를 탔는데 택시비도 안 받았어요.” 갑자기 달라진 주위의 대접에 자신도 놀라는 눈치다.
1일 오전 자택인 인천 연수구 아파트에서 그를 만났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이상은의 은메달 획득을 축하합니다’는 플래카드가 붙어있어 집 찾기가 수월했다. 올림픽 결승전에서 이를 악물고 대포알 같은 슈팅을 날리던 독기가 서린 표정을 기억하고 있는 기자에게 반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의 이상은은 뜻밖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덴마크와의 결승전은 초반부터 워낙 박빙의 승부여서 경기 자체에 완전히 몰입했어요. 12년 대표 생활을 하며 국제경기에서 승부던지기를 한 것은 처음이었으니까요.”
한국은 전후반을 25-25로 끝낸 뒤 2차례의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전후반을 동점으로 끝내면서 걱정했어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결승전에서 덴마크와 만나 연장전에서 졌거든요. 연장 1차전에서 반칙으로 2분간 퇴장 당했을 때는 정말 속이 탔어요.
체력은 거의 바닥났지만 연장 2차전까지 가니까 악이 받치더군요. ‘정말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질 수 없다’는 오기로 뛰었어요.”
이번 대표팀은 아줌마 팀. 결혼한 선수가 오영란(33·효명종합건설), 허영숙(29·부산시체육회), 임오경(34), 오성옥(33·이상 메이플레즈) 등 4명이나 되고 이 가운데 임오경과 오성옥은 아이를 둔 엄마다. 그런데도 끝까지 펄펄 날았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비결은 임영철 감독의 특별훈련. 바로 2002 한일월드컵축구를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실시했던 ‘파워트레이닝’이다.
“6월 중순부터 8월 초까지 1주일에 한 번씩 모두 6차례를 했어요. 20m 왕복달리기를 하는데 점점 뛰는 속도를 높여서 선수들이 완전히 지칠 때까지 계속하는 거예요. 이게 끝나면 곧바로 20분간 연습 경기를 하고 왕복달리기를 또 했어요. 얼마나 힘든지 후배 장소희가 실신해서 구급차에 실려 간 적도 있다니까요.”
핸드볼은 격렬하기로 소문이 난 경기. 게다가 체격이 월등하게 큰 외국선수들과의 경기는 ‘전쟁’이나 다름없다. 수비도, 공격도 몸을 완전히 내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
● 경기 끝나면 ‘파스 도배’ 잠 설쳐
“경기가 끝나면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요. 아프다보니 파스로 몸을 도배하다시피 하는데 파스 때문에 몸이 화끈거려 대회 기간 내내 제대로 잠을 못 잤어요.”
이상은은 전 소속팀인 알리안츠생명이 해체돼 8개월간 무적선수로 지냈다. 그러다 최근 창단된 효명종합건설 창단 멤버로 들어갔다.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이날 선수 소집이 있다며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어머니 윤옥분씨(63)는 아테네에서 돌아온 지 하루 만에 또 집을 떠나는 딸이 못내 서운한 눈치. 10년 전 남편이 건설 현장에서 사고로 숨진 뒤 혼자 딸을 뒷바라지해 온 윤씨는 문을 나서는 기자에게 “우리 상은이가 아버지 산소에는 자주 들러요. 대견하죠?”라고 한마디했다. 그 얼굴에는 딸 사랑이 가득해 보였다.
인천=김성규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