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들과 취향을 공유하기에 카페는 적절한 공간이다. 커피가 유럽 대륙에 수입된 17세기부터 프랑스의 대도시에 생겨난 카페는 서민들이 자주 찾는 싼 술집인 카바레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호화로운 실내 장식이 있었고, 예술과 지적인 토론이 있었다. 패션과 문화가 융합되는 현대의 숍에서 카페가 다시 살아났다.
프랑스 파리의 패션 멀티숍 ‘콜레트’와 ‘킬리와치’, 이탈리아 밀라노의 ‘10 코르소 코모’에는 옷이나 액세서리 쇼핑 공간 안에 테라스 카페가 있어 패션 관련 서적과 음반을 즐길 수 있다. 미국의 북 카페 ‘반스 앤드 노블스’에서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국내에서도 이 같은 트렌드가 시작되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재오픈한 신세계 인터내셔널의 패션 멀티숍 ‘분더숍’, 삼성동의 대규모 북 카페 ‘스타 라이브러리’, 신사동의 주얼리 카페 ‘포에버 위드 러브’가 그것이다.》
○ 패션 멀티숍 ‘분더숍’
지난달 27일 밤 오프닝 파티가 열린 분더숍.
샤넬, 루이뷔통 사옥 등을 건축한 이탈리아의 유명 건축가 귀도 스테파노니의 작품인 400평 규모의 이 4층 건물 한가운데는 펑 뚫려 있다. 그 공간을 4층 천장에서부터 1층까지 설치미술가 박선기씨의 숯 작품을 길게 늘어 뜨려 채워 놓았다.
1층 메인홀에서는 국내 연주그룹 ‘클래지콰이’가 공연을 시작했다. 음악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유럽 카페와 바에서 시작돼 전 세계 트렌드 세터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으는 라운지 음악. 파티에 초대 받은 사람들은 각 층에 진열된 옷을 구경하고, 그림을 감상하고, 음악을 듣는다.
버버리 프로섬, 커스텀 내셔널, 돌체 앤드 가바나 등의 옷이 진열된 4층에는 세계적 일러스트레이터 루벤 톨레도의 드로잉 작품들이 걸려 있다.
아르테 앤드 큐오이오, 토카 등 각종 인테리어 홈 컬렉션이 마련된 2층에서는 분더숍이 특별 제작한 컴필레이션 음반과 헤드셋이 비치돼 있다. 음반에는 재즈, 펑크, 보사노바 등의 흑인 음악에 깔끔한 도시 색을 입힌 일본 그룹 ‘파리 마치’의 음악 등이 들어 있다.
‘라이프 스타일 콘셉트 스토어’를 표방하는 분더숍은 각 층에 고객이 쉬면서 전시와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라운지를 두었다.
3층에는 소규모 음식 파티를 열 수 있는 야외 정원도 마련했다. 1층 메인홀은 각종 문화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완전히 비워 두었다. 1층 바깥에는 웨스틴 조선호텔이 운영하는 유기농 베이커리 카페 ‘베키아 앤드 누보 델리’도 있다.
신세계 인터내셔널은 이날 청담동 엠포리오 아르마니 매장에서 유명 영국 패션 사진가 란킨의 사진전도 열었다. 패션은 더 이상 옷을 입는 행위에 머무르지 않는다. 하나의 문화 장르로 또 다른 문화들과 만나고 있다. 02-542-8006
○ 북 카페 ‘스타 라이브러리’
7월 말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선릉역 부근에 2100평 규모의 북 카페 ‘스타 라이브러리’가 문을 열었다.
1층에 들어서면 매장의 절반은 서적이 진열돼 있고, 나머지 매장에는 카페가 운영된다. 카페에 앉으면 통유리창을 통해 바로 옆 선정릉의 숲이 쏟아질 듯 다가온다. 1층 야외에는 스타 라이브러리가 만든 인공 시냇물도 흐른다.
어머니와 함께 온 초등학생들이 카페에서 오렌지 주스와 빵을 먹으며 책을 읽는 평화로운 모습도 펼쳐진다.
일본 도쿄의 트렌드 발신지 록폰기 힐스 49층의 24시간 회원제 북 카페 ‘아카데미 힐스’를 벤치마킹한 이곳은 아직까지는 회원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수익 모델을 위해 회원제로 운영할 계획이다. 운영 초기인 현재는 35만원을 내면 6개월 동안 50만원 상당을 이곳에서 책을 사거나 카페를 이용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1층에는 인문·종합 서적과 베이커리 카페, 지하 1층에는 패션·요리·외국 서적, 음반 코너, 레스토랑이 있다. 지하 2층에는 각종 동호회 모임과 문화 예술 공연을 위한 세미나실과 홀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얼마 전 이곳에서 세미나를 열었다.
스타 라이브러리 고대우 점장은 “지역 특성상 30대 고객이 가장 많고, 경제·경영 분야의 책이 잘 팔리고 있다”고 말한다. 02-2204-8733
○ 주얼리 카페 ‘포에버 위드 러브’
지난달 ㈜삼신 다이아몬드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매장 2층에 문을 연 ‘포에버 위드 러버’는 보기 드문 주얼리 카페이다.
9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이 카페 한쪽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고, 그 반대쪽에는 수백종의 와인을 갖춘 바가 있다.
각 테이블 중앙은 네모 모양으로 파여 각종 보석이 진열돼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음식과 와인을 나누며 로맨틱하게 보석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 유명 건축가 류춘수씨가 디자인해 시공한 이 카페는 의자와 커튼을 벨벳 소재로 만들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한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이 김정은에게 약혼반지를 선물한 바로 이곳이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오픈 행사 때 현악 4중주 공연을 했고, 이후 화장품 업체의 뷰티 클래스와 와인 강좌도 열었다. 앞으로는 소규모 전시와 콘서트도 계획한다.
3개의 프러포즈 룸도 별도로 운영된다. 룸 이용료는 시간 제한 없이 5만원. 연인에게 반지를 건네는 청혼 장소 또는 결혼을 앞둔 가족의 상견례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김수미 팀장은 “가장 편안한 분위기에서 보석과 사랑을 나눌 장소를 의도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역사적으로도 카페는 축제의 장소, 사교의 장소, 로맨스의 장소였으니. 02-540-3825
글=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사진=강병기기자 arch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