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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산책]홍콩 애니메이션 ‘맥덜’

입력 | 2004-09-02 17:02:00

아기 돼지 맥덜의 우습고도 쓸쓸한 성장사를 담은 애니메이션 ‘맥덜’. 맥덜은 뛰어난 능력은 없지만 자기노력으로 시련에 굴하지 않고 낙천적인 삶을 살아가는 홍콩인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제공 스폰지


3일 개봉되는 홍콩 애니메이션 ‘맥덜’을 어린 돼지의 좌충우돌 모험극쯤으로 예단하고 극장을 찾는다면 무척 당혹스러울 수 있다.

낄낄거리고 웃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른을 위한 동시(童詩)에 가까운 이 74분짜리 성장영화 속에서 아기돼지 맥덜이란 존재는 누구나 한번쯤 지나왔을 법한 어린 시절 ‘나’에 대한 따뜻한 은유요, 아스라한 추억이다.

먹는 것만 밝히는 아기돼지 맥덜은 어느 날 자신만 바라보고 사는 엄마 돼지 맥빙 여사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 감동받는 모습을 본다. 맥덜은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금메달리스트의 스승인 산산을 찾아간다. 맥덜은 피나는 노력으로 전통 스포츠인 만두치기 기술을 배우지만, 안타깝게도 만두치기는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는다.

‘맥덜’은 형식과 내용이 긴밀하게 대화한다. 형식과 내용이 만나는 지점은 자유로운 상상력이 ‘성장’이라는 제법 묵직한 테마를 만나는 곳이며, 배꼽 잡는 유머가 가난이라는 쓸쓸함을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억척스러운 맥빙 여사가 할인점에서 값싼 물건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카트를 밀어대며 ‘아줌마’들과 한판 레이스를 벌이는 장면은 흥미진진한 컴퓨터 게임처럼 묘사되는데, 이는 생존을 위한 홀어머니의 고단한 삶이 맥덜의 철딱서니 없는 눈높이로 옮겨지는 순간이다. 이 영화가 웃길수록 쓸쓸하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맥덜’은 어떤 때는 바보스러울 만큼 낭만적이고 또 어떤 때는 차가울 만큼 현실적이다. 이런 낭만과 현실의 간극에서 웃음과 쓸쓸함이 만들어진다.

우선 제작기법이 그렇다. 맥덜의 우스꽝스러운 일상은 장난스럽고 투박한 느낌의 셀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지지만, 반대로 맥덜과 엄마가 사는 홍콩 빈민가는 실제 빈민가를 촬영한 실사 영상 위에 컴퓨터 그래픽을 덧씌워 처리해 극사실주의적 냄새를 풍긴다. 에피소드도 그렇다. 몰디브에 가는 게 소원인 맥덜을 위해 케이블카를 비행기라고, 공원을 몰디브라고 속이는 맥빙 여사의 아름다운 거짓말에도 낭만과 안타까운 현실이 쌍둥이처럼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맥덜’ 속 유머와 상상력은 엉뚱하고 수다스럽고 극단적인 데다 냉소적이기까지 하지만, 차곡차곡 쌓여서 아주 애틋하고 진정한 느낌을 준다.

한참 정신 사납게 떠들던 맥덜의 사부가 홀연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선율에 맞춰 슬픈(?) 가사(“어제 만두 여섯 개를 먹었지∼. 그래도 배가 고파∼”)를 읊조리고, 맥빙 여사가 잠드는 맥덜의 머리맡에서 아들이 올바르게 자라주길 바라는 심정으로 다음과 같은 동화를 들려줄 때도 말이다.

“옛날에 거짓말쟁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죽었단다. 옛날에 공부 열심히 하는 소년이 있었는데 커서 부자가 됐단다. 옛날에 말 안 듣는 소년이 있었는데 발목을 삐었단다. 옛날에 잠 많은 소년이 있었는데 다음 날 죽었단다.”

‘맥덜’은 당초 1990년대 초반 홍콩의 스토리 작가인 브라이언 츠와 일러스트레이터인 앨리스 막 부부가 고안해낸 만화 캐릭터. 1997년 토 유엔 감독이 TV 시리즈로 만들어 큰 인기를 끌자 2001년 말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지난해 중국 작품으론 처음으로 안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전체 관람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