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월드컵 기다리는 ‘거미손’2004 아테네 올림픽 3경기에서 8골을 내주며 996분 무실점 행진을 끝낸 축구대표팀의 수문장 김영광. 그는 “올림픽에서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지만 더욱 노력해 이를 훌쩍 뛰어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파주=전영한기자
“지난해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16강전에서 일본에 패했을 때는 그라운드에서도 울었고 호텔방으로 돌아온 뒤에도 계속 울었습니다. 하지만 아테네 올림픽에선 8강전에서 탈락한 뒤 눈물도 안 나더군요. 그냥 머릿속이 하얗게 비면서 허탈감이 밀려 왔습니다.”
● 16세이하 대표부터 엘리트코스 밟아
‘리틀 칸’ 김영광(21·전남 드래곤즈)만큼 한국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축구선수는 없다. 대한축구협회가 운영하는 연령별 대표팀인 16세 이하부터 시작해 19세 이하, 올림픽대표팀(23세 이하)과 국가대표팀까지 모두 섭렵한 것은 김영광뿐이다.
그는 아테네 올림픽 전까지 11경기에서 996분 동안 무실점 행진을 했다. 그런데 올림픽 4경기를 치르는 동안 멕시코전을 빼고 3경기에서 먹은 골이 무려 8골. 말리, 파라과이전에서 각각 먹은 3골은 태극 유니폼을 입은 뒤 한 경기에서 허용한 최다골이다. 기분이 어땠을까.
“전 골을 먹고 나면 바로 잊어버려요. 마음에 담아 두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거든요. 어떨 때는 경기가 끝난 뒤 감독님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요.”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베트남전을 앞두고 2일 파주 축구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열린 국가대표팀 소집훈련에 합류한 김영광의 얼굴은 의외로 밝았다. “올림픽 무대에 설 정도면 모두 대단한 팀들이잖아요. 골을 먹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다. 가장 뼈아픈 실점은 파라과이전에서 허용한 두 번째 골. 전반에 한 골을 먹고 후반 한국의 동점골이 터질 듯한 분위기에서 내준 골이기 때문. 김영광은 “순간 뒷머리에 번개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막아냈으면 추격이 어렵지 않았을텐데 이제 기회가 날아간 것 아닌가”하는 생각에 동료들을 보기가 부끄러웠다고.
김영광은 이번 올림픽에서 슈팅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시야를 가리는 앞머리를 가위로 잘라버렸다.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수염까지 길렀다. 그러나 상대가 워낙 강했다. 아직 우리는 멀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했다고.
● 술은 입에도 안대… 노래방서 화풀이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 김영광. 그는 속상하면 노래방에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른다. 아테네에선 골을 먹은 뒤 방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 보면 김영광은 경기 중에도 고함을 많이 지른다. 그라운드에선 하늘 같은 선배 유상철에게도 반말로 지시할 수 있는 것이 골키퍼의 특권이란다. “골키퍼가 말을 많이 하면 지지 않는대요. 동료들의 주의도 환기시키고 제 스스로도 최면을 거는 거지요.”
그의 눈은 벌써 2006 독일 월드컵으로 가 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유럽과 남미, 아프리카 팀을 모두 만났잖아요. 앞으로 독일 월드컵에서 다시 이들을 만난다면 골을 안 먹을 자신이 있어요.”
김영광은 이날 훈련 중 왕복달리기에서 공격수와 수비수를 모두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파주=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