彭城에 깃드는 어둠(14)
“대왕께 받은 세 현(縣)의 군사를 모조리 긁어모은 진여(陳餘)가 전영이 보낸 제나라 군사들과 더불어 조(趙)나라를 들이쳤다고 합니다. 조나라 땅을 봉지로 받은 상산왕(常山王) 장이는 힘을 다해 맞섰으나 진여와 전영이 합친 힘을 당해내지 못해 크게 지고 말았습니다. 도읍인 양국(襄國)을 버리고 서쪽 폐구(廢丘)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와 그렇게 알리는 군사에게 항왕이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장이가 싸움에 져서 봉지를 잃었다면 응당 패왕인 과인에게로 와서 알려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서쪽으로 달아나 폐구로 갔는가?”
“그곳에 있는 한왕 유방에게 의탁해 간 듯합니다. 듣기로 한왕은 장이를 예절바르게 맞아들였을 뿐더러 그지없이 두텁게 대접하였다고 합니다.”
눈치 없는 군사가 그렇게 대답했다.
장이가 한왕 유방에게로 달아났다는 말에 항왕은 울컥 화가 치솟았다. 그러나 소식을 가져온 군사의 잘못이 아니라 그를 꾸짖지는 못하고,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어 물었다.
“그럼 조나라는 그 뒤 어떻게 되었는가?”
“장이를 내쫓은 진여는 대왕(代王)으로 밀려나 있던 전 조왕(趙王) 헐(歇)을 다시 맞아들여 왕으로 세웠다고 합니다. 이에 조왕은 진여를 고맙게 여겨 그를 자기 봉지(封地)인 대나라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진여는 조왕이 허약한 데다 조나라도 모든 것이 이제 막 새로 정해진 터라, 새로 얻은 자기 나라인 대(代)로 갈 수 없었습니다. 조왕 곁에 머물러 그를 도우면서, 조나라를 안정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대나라는 비어있다는 말이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진여는 제 밑에 두고 부리는 하열(夏說)을 상국(相國)으로 삼아 대나라에 보내 그 땅을 지키게 하였다고 합니다.”
진여나 조왕은 모두 항왕의 논공행상과 분봉(分封)에 불만을 품어온 자들이었다. 조나라가 안정되는 대로 자기들을 도와준 제왕(齊王) 전영과 손을 잡고 패왕에게 맞서올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힘을 합치기 전에 제나라부터 서둘러 쳐 없애야 했다.
“일이 급하게 되었다. 어서 아부(亞父)를 모셔 오라!”
동북의 소식을 가져온 군사를 내보낸 항왕은 좌우를 재촉해 범증을 불러오게 했다. 의제를 죽이는 논의에서는 범증을 뺐으나, 이제 사정은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그는 대군을 움직이거나 나라의 큰 계책을 의논하는 데는 없어서는 안 될 군사(軍師)였다.
오래잖아 상복차림의 범증이 어두운 얼굴로 항왕 앞에 나타났다. 의제의 죽음조차 숨길 수는 없어 그날 아침 경포가 보낸 글을 보여준 때문인 듯했다. 항왕이 진여와 조나라의 소식을 일러주며 군사를 내기를 서둘렀으나 범증은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의제의 상중(喪中)이라 군사를 움직일 때가 아닙니다. 주(周) 무왕(武王)은 문왕(文王)의 상중에 군사를 일으켜 백이(伯夷) 숙제(叔齊)의 배척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후세 군자들의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다시 한왕 유방이 함곡관을 넘었다는 소식이 들어와 제나라로 향하는 항왕의 발목을 잡았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