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물러서기만 하다가 어디까지 밀려갈지 모르겠다.”
2일 군이 서해상 북방한계선(NLL·Northern Limit Line)을 침범한 북한 선박이 단순 침범했을 경우 경고사격을 자제하도록 작전예규를 개정한 것으로 알려지자 군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개정은 6월 남북장성급회담에서의 ‘서해상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에 따른 것이라는 게 군의 설명이지만 북한이 NLL 무력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에서 ‘지나친 양보’라는 지적이 많다. 북한은 올해 들어 거의 2주일에 한번꼴로 NLL을 침범해 왔다.
▽북한 함정 한국 해역에서 제한적 기동 허용=작전예규란 야전에서 즉각 수행할 수 있도록 세분화한 작전 시행계획. 2002년 6월 서해교전 이전 서해상 NLL 작전예규는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순서였다.
그러나 서해교전 당시 ‘경고방송’과 ‘차단기동’(북한 선박의 항로를 차단하기 위한 기동)을 위해 북측 함정에 접근했다가 함포사격을 받아 아군의 희생이 컸다. 이 때문에 합참은 서해교전 직후인 2002년 7월 2일 작전예규에서 ‘경고방송’과 ‘차단기동’의 두 단계를 뺐다.
그러나 올 6월 남북장성급회담의 합의에 따라 합참은 작전예규에 ‘경고통신’ 단계를 포함시켰다. 상호 통신으로 NLL 무력화 의도 여부를 사전 탐지한 뒤 실력행사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북측 선박은 남측의 묵인 아래 중국 어선 단속이나 표류한 북한 어선 구조 등의 목적으로 한국 해역에서 제한적인 기동이 가능하게 됐다. 지금까지는 북한이나 중국 어선이 NLL 남쪽으로 내려오면 한국 해군이 구조하거나 단속해 북측에 인도하는 방식으로 작전이 이루어져 왔다.
▽“안보 관련 지침은 보수적으로 바뀌어야”=이번 개정이 군 안팎에서 논란을 일으키는 첫번째 이유는 무력충돌 직전의 급박한 현장에서 북측이 NLL을 무력화할 의도로 침범했는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7월 NLL 보고누락 사건 때도 북한 경비정은 남측과의 교신에서 ‘중국 어선’으로 가장했다.
충분한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작전예규를 2년 만에, 그것도 북한의 NLL 무력화 의도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개정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남북간에 활발한 대화가 이루어지더라도 작전 관련 지침은 가장 늦게, 가장 보수적으로 바뀌는 것이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남북의 해상 통신망은 북측의 수신 거부 등으로 걸핏하면 두절되고 있다. 이 때문에 상호 교신을 통해 NLL 무력화 의도를 판단하는 것도 실효성이 떨어진다. 남북장성급회담에서 무력충돌 방지에 합의한 이후 북측은 6차례 NLL을 침범했다. 이 가운데 아군 함정의 무선호출에 응한 것은 단 두 번뿐이었다.
일각에서는 작전예규 변경에 따라 자칫 한국군의 대응이 수세적으로 바뀔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사전 교신으로 NLL 무력화 의도 여부를 파악하라고 한 지침이 ‘경고사격 자제’ 지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NLL 남쪽에서의 북한 선박 기동을 활발하게 해 주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제균기자 phark@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