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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검증]노무현정부 정책기조 변화

입력 | 2004-09-02 18:48:00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주요 정책이 출범 초에 비해 적지 않은 변화를 겪고 있다. 경제정책의 경우 어려운 경제여건으로 인해 실용주의 노선으로 상당히 선회했고, 외교안보 정책도 현실 노선을 지향하고 있다. 반면 정권의 정체성 등에 관한 분야에선 정책의 경직성이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격’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분야별로 정책 변화실태를 살펴본다.》

▼경제▼

2003년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재계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인수위의 대기업 정책이 ‘재벌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 강화와 상속증여세 완전포괄 과세 도입, 대기업의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강화 등은 대기업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지면서 여권은 경기부양책을 잇달아 내놓는 등 경제정책의 기조를 바꾸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개혁과 균형을 중시한 경제정책 기조=노무현 정부는 처음에는 ‘선택과 집중’보다는 ‘분배와 균형’에 초점을 맞춘 정책목표들을 잇달아 내놨다. 여성, 장애인, 지방대졸업생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적극적 차별시정조치’ 방안도 나왔다.

‘개혁과 균형 중시’ 경제정책은 SK에 대한 검찰수사와 LG카드 사태 등으로 당시 금융시장이 극도로 불안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됐다.

하지만 신용불량자 증가에 따른 소비침체 속에 정책의 불확실성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국내 경기는 극도의 침체를 보였다. 지난해 수출의 호조세에도 불구하고 국내 민간 소비는 전년도에 비해 1.4%, 설비투자는 1.5%가 각각 감소했고 결국 경제성장률은 3.1%에 머물렀다.

대통령후보시절 매년 7% 경제성장을 공언했던 노 대통령도 6월 17대 국회 개원연설에서 올해에는 5%대, 내년 이후엔 임기 중 매년 6% 이상 성장하겠다며 눈높이를 낮췄다.

또 “2만달러 시대를 열겠다”던 중장기 로드맵에 대해서도 회의하는 시각이 많아지고 있다.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여권=여권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경제 현실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은 올 2월 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기용이었다.

현 정부의 코드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는 부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기업부민’(起業富民·사업을 일으켜 백성을 부유하게 한다는 뜻)을 화두로 내걸고 투자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나섰다. 또 강신호(姜信浩)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만나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기도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시장(市場)에 현 정부가 시장과 기업친화적으로 가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굴곡이 있었다. 특히 4월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고, 이념지향적인 386세대 의원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다시 여권에서는 ‘개혁’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시장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지향하는지 헷갈린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러던 중 지난달 한국은행이 전격적으로 콜금리를 인하하면서 여권이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는 ‘신호’가 잇달아 나왔다. 지방을 중심으로 투기지역 일부 완화 등 건설경기 연착륙을 위한 본격적인 대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이른바 ‘시장주의자’로 통하는 의원들의 발언권이 커졌다. 감세정책과 재정정책 등 그동안 금기시됐던 경기부양책이 경기활성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특히 여권이 비경제 분야에서 여전히 반시장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을 볼 때 정책 방향을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것.

경제분야에 대한 여권의 ‘현실인식’에 지지층이 반발할 경우 여권이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선 제기되고 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외교안보-사회문화▼

▽이상과 현실의 괴리 느끼는 외교안보=집권 초기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 △대등한 한미관계 추구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 건설 같은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의 선결과제는 북핵 문제의 해결. 지난해 8월 천신만고 끝에 6자회담의 시작으로 북핵 문제 해결의 틀이 마련된 것은 현 정부의 대표적 성과로 꼽힌다. 그러나 북-미간 불신과 이견이 해소되지 않아 북핵 문제는 ‘관리될 뿐, 해결되지는 않는 위기’라는 한계에 봉착해 있다.

중국과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와 일본과의 과거사 및 독도 문제 등도 정부의 동북아시대 구상에 차질을 주고 있다.

외교안보연구원 배긍찬(裵肯燦) 교수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중국 대 일본’이란 기존 구도가 고구려사 문제로 깨지고 있는 것이 참여정부엔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대등한 한미관계’를 강조해 한미동맹관계 재조정을 이슈화했다. 이는 주한미군 재배치와 감축 논의로 이어졌으나 미국이 1만2500명의 주한미군 조기 감축 계획을 통보해오면서 정부의 자주국방 프로그램 시간표가 헝클어졌다.

정부는 ‘남북 회담의 정례화’를 위해 노력해왔으나, 최근 북측이 김일성 주석 조문 파문과 탈북자 대규모 입국 등을 이유로 장관급 회담 등 당국간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사회문화정책=노 대통령은 대선 당시 국가보안법을 대체하는 입법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으나 현재 여권 내에서조차 국보법 폐지와 개정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는 국민적 의혹사건과 권력형 비리, 고위공직자 비리를 전담하는 ‘한시적 상설 특검제’ 실시 방침을 밝혔지만 여권은 현재 이를 대체하는 역할을 할 대통령 직속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야권은 “정치적 중립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여권이 주도하는 이른바 ‘언론개혁’ 정책은 신문시장 점유율 제한 및 신문사주의 지분을 제한하는 등 신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노 대통령은 대선 당시 ‘편집의 자유와 독립, 경영 투명성 강화를 위한 관련 법 정비’라는 다소 추상적 공약을 제시했다. 야권에선 “방송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여권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과거사 정리 문제는 대선공약이나 인수위 최종보고서에선 전혀 거론된 적이 없다. 그래서 그 정치적 의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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