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인 전남 장흥의 고갯마루에 선 김영남 이청준 김선두씨(왼쪽부터). 사진제공 학고재
“전남 장흥은 자랑거리가 많은 곳입니다. 고인돌이 2251기나 있는 고인돌 고장입니다. 백의종군을 마친 이순신 장군이 3도 수군통제사로 전함 12척을 추스른 곳이기도 하지요. 서편제 촬영세트, 문인들의 친필 문학비가 숲처럼 조성돼 있는 전국 유일의 문학 비림(碑林)도 있습니다.”
장흥군이 고향인 이청준(소설가) 김영남(시인) 김선두씨(화가·중앙대 한국화과 교수)가 입을 모으는 고향의 자랑거리다. 그러나 이 ‘글쟁이, 환쟁이들’이 함께 만든 책 ‘옥색 바다 이불 삼아 진달래꽃 베고 누워’(학고재)를 보면 고향은 이들에게 무슨 거창한 사적지나 관광지라기보단 “별의별 사연을 다 나눈 나이든 애인과도 같은 곳”임을 알 수 있다.
“가세가 기울자 저는 고향에서 달아나듯이 떠나왔어요. 아픈 기억이 많이 남아 있지요. 하지만 장흥은 언제나 제 문학의 젖줄입니다. 김 시인, 김 화백과 함께 이 책을 만들기로 하고 처음으로 함께 고향에 가보니 수만 포기 자줏빛 할미꽃 군락이 한재 고개를 뒤덮고 있더군요. 우리는 한동안 넋을 잃었는데, 그 느낌을 뭐라고 해야 할지….”(이청준)
김영남 시인은 “내가 가장 아끼는 시를 이번에 고향에 갔다가 쓰게 됐다”고 말했다. ‘푸른 밤의 여로-강진에서 마량까지’가 그것이다. 마지막 연은 이렇다. ‘여긴 푸른 밤의 끝인 마량이야. 이곳에 이르니 그리움이 죽고 달도 반쪽으로 죽는구나. 포구는 역시 슬픈 반달이야. 그러나 정말 둥근 것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거고 내 고향도 바로 여기 부근이야.’
김선두 화백은 영화 ‘취화선’에서 주인공 장승업 역을 맡았던 최민식 대역으로 장승업의 그림을 그린 사람이다. 그는 ‘이송(二松)’이라는 호를 쓰는데 이 책에서 호의 뜻이 무엇인지 밝혀놓았다. “아버님은 할아버님 반대를 무릅쓰고 화가가 되겠다며 저를 고향에 남겨둔 채 상경하셨지요. 가끔 귀향하셨다가 쓸쓸해져서 금세 올라가셨는데, 하루는 크레파스를 제게 선물로 주셨어요. 무슨 보물 같았던 그 크레파스를 저는 지금도 잊지 못해요. 화단의 텃세에 고독하셨을 아버님. 고향 마을에 서 있는 큰 소나무 두 그루를 보면 화가가 된 아버님과 저처럼 생각돼요.”
이들은 “남들이 ‘지역’을 말하기 꺼리는 지금 우리는 고향을 이야기하기로 했다”며 “이런 시도가 방방곡곡 예술인들에 의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