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서현 지음/279쪽 1만4000원 효형출판
독서 경력은 대입 자기소개서의 주요 평가항목이기도 하다. 수험생들은 독서로 지원할 전공에 대한 관심을 갖고 소양을 쌓았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따라서 저학년 때부터 관심 분야에 관한 책읽기를 꾸준히 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까? 먼저 대학에서 권하는 필독 고전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들은 학생들의 이해 수준을 대부분 넘어선다. 억지로 읽기보다는 아예 입문서부터 착실히 보는 것이 좋다. 입문서를 고를 때는 그 책이 오랫동안 많이 팔렸는지 확인해 보자. 꾸준한 판매는 내용이 알차다는 뜻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필자의 책이라면 더욱 좋겠다. 원래부터 우리말로 쓴 글은 번역서보다 훨씬 수월하게 읽힌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는 위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건축 입문서다. 저자 서현 교수는 명동성당, 서울대병원 등 우리 주변의 건물들을 소재로 건축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냈다.
빈 벽에 못을 박아 보자. 못은 작은 점에 지나지 않지만, 사람들은 은연중에 못을 중심으로 벽 전체를 바라본다. 건물도 마찬가지다. 에펠탑 같이 높은 건물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 건물을 중심으로 자신과 다른 집들의 위치를 파악할 것이다. 못이 2개가 되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못 사이의 거리와 위치로 공간을 해석하기 시작한다. 마주보고 있는 서울 여의도 쌍둥이 빌딩을 떠올려 보자. 두 건물이 너무 떨어지면 비어 보이고, 붙어 있으면 답답해진다. 건축가는 긴장감을 잃지 않는 ‘적당한’ 거리와 대칭관계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저자는 쉬운 비유를 통해 선과 비례, 대칭 등 건축의 원리들을 조목조목 설명해 간다.
아울러 모든 건물은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있다. 백화점으로 쓰일 빌딩을 설계할 때는 들뜬 시장의 분위기를 살려내야 한다. 그래서 에스컬레이터 같이 움직이는 대상들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놓고 사람들 동선(動線)도 최대한 노출시키기 마련이다.
또 교회나 사찰같이 속세와 거리를 두는 곳에서는 일부러 진입로를 길게 내기도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오라는 배려에서다. 이처럼 책을 읽다 보면 건물 구석구석에 담긴 건축가들의 섬세한 안목에 절로 무릎을 치게 된다.
우리 건축 문화에 대한 저자의 비판도 눈여겨볼 만하다. 건물의 가치는 임대 공간 크기에 따라서만 매겨질 수 없다. 당장은 손해 보는 듯싶더라도, 문화공간이 충분하고 예술적 가치가 풍부한 건물을 짓는 것이 더 큰 부가가치를 낳을 수 있다. 재개발이란 명목하에 빽빽해져만 가는 도시 풍경에 갑갑해 하는 학생이 있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은 어떨까? 도시의 얼굴을 바꿀 인재가 이 책을 통해 탄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학교도서관 총괄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