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4시경 울산 울주군 삼동면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대구∼부산) 중 천성산 원효터널 공사 현장. 지율(知律·내원사) 스님의 단식농성으로 지난달 27일 결국 공사가 중단된 현장을 국회 예결위원회 소속 의원 22명이 실태 파악을 위해 방문했다.
한국철도시설공단 정종환(鄭鍾煥) 이사장은 현황을 브리핑하면서 의원들에게 공사가 빨리 재개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했다.
공단측은 또 천성산에 터널이 뚫리면 소음과 진동, 물 빠짐 현상으로 도롱뇽 등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는 환경단체들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것도 지적했다. 천성산 정상 부근의 늪지는 터널구간에서 수백m씩 떨어져 있어 물 빠짐 현상은 나타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아울러 천성산 옆으로는 경남 양산 시가지와 대규모 공단이 있어 노선을 변경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보고했다.
보고가 끝난 뒤 일부 의원은 “왜 미리 환경단체에 이런 사실을 설득하지 못했느냐”, “개발논리에 치우쳐 예산만 낭비하는 게 아니냐”며 공단측을 몰아세웠다.
다른 의원들은 “만약 다른 국책사업도 몇 사람이 반대하면 중단할 것인가”라며 은근히 공단을 지원하기도 했다.
터널 건설에 따른 환경피해 등 공단측과 환경단체간의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거론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율 스님 등이 그토록 반대해 온 원효터널(전체 길이 13.28km) 입구가 보고회장에서 불과 30여m 떨어진 곳이었지만 터널공법 등을 살펴본 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이들은 다음 일정인 부산 신항만과 가덕대교 건설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40여분 만에 자리를 떴다.
의원들이 탄 버스가 떠나자 한 주민은 “국회의원이 잠깐 현장을 방문한다고 얼마나 실태를 파악할 수 있겠느냐”며 “이러니 의원들의 현장 방문이 ‘차기 선거 홍보물 사진 촬영용’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꼬집었다.
의원들이 기왕에 귀중한 시간을 내 국책사업이 표류하는 현장을 찾았다면 논란이 되는 부분을 직접 확인하고 자세히 살펴보는 성의를 보였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정재락 사회부 ra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