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평우씨가 2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중앙극장 앞 사거리에서 껌팔이 좌판을 하고 있는 한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로하고 있다. -권주훈기자
“봉사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습니다. 그들을 만나서 같이 밥 먹고 목욕하는 시간이 즐거우니까 해 왔던 겁니다.”
문화재 전문 건축설계사인 이평우씨(54)는 지하철역이나 길거리에서 뇌성마비 장애인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꼭 손이라도 잡아줘야 마음이 놓인다.
이씨가 뇌성마비 장애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뇌성마비 1급 장애를 가진 둘째 아들 상철씨(20)의 영향이 크다. 태어날 때 탯줄이 목을 조여 인공호흡으로 간신히 살 수 있었던 아들은 뇌에 손상을 입어 뇌성마비에 걸린 것.
이씨는 “내 눈에는 예뻐 보이는 아들이 남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어떻게 취급될지 눈에 선했다”며 “그때부터 다른 뇌성마비 장애인들이 남들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가 본격적으로 이들을 돕기 시작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이씨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은 장애인이 60여명. 지금은 명동 거리에서 껌을 팔고 있는 박상신씨(41)를 포함해 5명의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4년 전 추운 겨울날, 불편한 몸으로 명동 중앙극장 앞에서 껌을 팔고 있던 박씨를 발견한 이씨는 처음엔 껌을 사주었지만 이제는 목욕과 면도를 시켜주는 관계로 발전했다.
“박씨가 마음을 여는 데 2년이 걸렸어요. 장애인들은 동정심으로만 대하면 마음을 안 열어요. 저한테 먼저 ‘목욕 좀 시켜 달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이 친구가 이젠 마음을 열었다는 걸 알았죠.”
박씨는 가끔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면도 좀 해 달라’ ‘듣고 싶은 노래가 있는데 카세트테이프를 좀 사달라’는 등 이런 저런 부탁을 해온다. 이씨는 그럴 때마다 두말없이 명동으로 달려가 박씨의 부탁을 들어준다.
이씨가 지체장애 6급인 박원구씨(55)를 알게 된 곳은 서울 서초구 양재역 부근. 제대로 걷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박씨를 본 이씨는 쌀을 갖다 주는 등 매달 일정액을 박씨에게 보내고 있다.
매달 월급의 반은 이들을 위해 쓴다는 이씨는 “뇌성마비 장애는 신체적 장애일 뿐 그들의 마음은 누구 못지않게 착하다”며 “이들을 도우면서 내 행복지수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이들에게 밥을 먹여 주면 앵벌이 시키려고 접근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도 많다”며 “세상이 조금 덜 각박해져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지방에 마련해둔 땅이 있는데 이곳에 무료 복지관을 만들고 싶다”며 “이들을 위한 것이 아들을 위한 것도 되니 일석이조”라며 환하게 웃었다.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