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문화마당 앞에서 거리의 화가 하정남씨가 손님의 캐리커처를 그려주고 있다. 그는 인사동 문화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인사동에 푹 빠졌다. 뒤쪽 벽면엔 거리의 화가들이 전시하고 있는 작품들. 권주훈기자
2일 오후 3시 서울 종로3가 탑골공원에서 인사동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인사문화마당 앞. 이곳에서는 이젤을 펴고 초상화와 캐리커처를 그리는 ‘거리의 화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종로구는 4월 인사동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화가들을 상시 배치해 원하는 사람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는 공인 ‘인사동 거리화가’ 5명을 선정했다.
이들 중 가장 노장이며 리더격인 하정남씨(59·경기 고양시 일산구). 그는 거리의 화가 중 유일하게 만화가 출신에 캐리커처 전문가. 대개 10∼20분이면 한 작품이 완성된다. 비용은 1만∼2만원으로 저렴하다.
하씨는 “캐리커처에 만족하는 한국 사람은 10명 중 4명 정도”라며 “40, 50대 여성들은 ‘내가 이렇게 늙었나’, ‘내가 이렇게 뚱뚱하냐’고 따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때마다 하씨는 캐리커처는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사진과는 다르다고 설명해 준다.
하씨는 17세 때부터 만화를 그렸다. 그림 연습을 위해 경복궁 덕수궁 등 서울 시내 고궁들을 돌아다녔다. 덕분에 현재 서양화가인 아내를 덕수궁에서 만나는 행운도 찾아왔다. 26세에 결혼한 뒤 교육용과 학습용 만화를 그리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가 거리의 화가가 된 것은 1992년. 만화업계에 있던 하씨는 당시 불경기로 큰 타격을 받았다. 이후로 놀이동산 공연장 등을 돌아다니며 캐리커처를 그렸다. 전국을 다 돌아다녔다. 한달 수입은 300만∼400만원으로 벌이가 좋았다.
하씨가 인사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97년부터. 일요일이면 차 없는 거리가 됐던 인사동 거리에 우연찮게 자리를 잡게 됐다. 그때부터 인사동 문화에 빠졌다. 그림 그리기가 쉽지는 않았다. 다른 노점상인과 자리 때문에 싸우는 일도 잦았기 때문이다.
“인사동에 매료된 뒤로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어요. 전시관, 고서적,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등 인사동이 지금도 그렇게 좋을 수 없어요.”
공인된 거리의 화가가 된 하씨는 자리 때문에 싸우는 염려를 덜었다. 그러나 벌이는 예전에 비해 절반 정도로 줄었단다.
하씨는 “전통문화공간으로 살아 숨쉬는 인사동 공간이 최근 노숙자들이 증가하고 노점상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서는 바람에 많이 훼손되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인사동문화지킴이 다음카페(cafe.daum.net/insasarang)를 운영하면서 인사동의 다양한 문화를 사진으로 찍어 올려놓기도 한다.
거리의 화가는 낮 12시부터 오후 7시 사이에 인사동을 찾으면 만날 수 있다. 거리의 화가는 10월 말까지 운영하고 겨울을 보낸 뒤 4월 초에 다시 선보인다.
이진한기자 likeday@donga.com